대학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이후, 조금씩 더 나의 정체성등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는 중이다.
나는 바이섹슈얼, 양성애자이다.
요즘들어 더 열심히 되뇌이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려고 하는 나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지렁이에 들어간 이후,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회의를 할 때마다, LGBT를 함께 이야기 하자는 자리에서 의도하지 않게빠지는 성전환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 게이,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의 잊고 있음에 분노하기도 하고, LGBT에는 게이, 레즈비언 뿐 아니라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도 들어가는 것임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목소리에는 내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전환자는 이야기 했지만, 정작 나의 정체성인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는 많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바이섹슈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그 삶을 소위 말하는 일반들안에서가 아닌 LGBT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큰 모험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바이는 언젠가는 떨어져나갈 사람으로 인식되고, 거부당하고 있는것이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니까.
여자친구들을 짝사랑하면서, 그리고 사귀면서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상당히 고민도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보고 고민해 봐도, 나는 바이섹슈얼이었고, 계속 바이섹슈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사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여자 만나면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해도 되는거잖아"라는 류의 말조차 듣기가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그냥 말하기만 편한거잖아. 그렇게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 한쪽 구석이 계속 서걱거릴게다.
바이섹슈얼로 살아감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 레즈비언의 인권, 비혼으로 살아감, 게이로 살아가는것, 그리고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것에 대해서는 뭔가, 조금씩 그래도 감이 잡히는 것도 같은데, 양성애자로 살아감을 이야기 한다는건에 대해서는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냥 내가 살아온것이 바이섹슈얼의 삶일텐데, 그것을 말로,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줄은 몰랐다. 이성애자로서의 삶에서 오는 고민과 동성애자의 삶에서 오는 고민을 모두 짊어진 채 살아가야하는 것. 이전의 누군가를 사랑했었던 나의 과거를 상대편이 불편해 할까봐 쉽사리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는것 또한 바이섹슈얼의 삶인게 아닐까.
나도, 당당한 바이섹슈얼이고 싶다.
지난 10월 커밍아웃데이에서 "나는 바이섹슈얼이예요"라고 말했던 그때처럼, 모두에게 당당한 바이섹슈얼로 서고싶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가 바이라고 말하는것이 조금 불편하다. 차라리 성소수자라는 단어 속에, LGBT라는 단어 속에 숨어서 아무것도 아닌척하며 사는것이 조금은 더 편한것만 같다. 레즈비언으로 패싱되는 지점에서는 그냥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가끔은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이유로 불편해지는 지점들이 있으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바이섹슈얼로 살아가는것. 그리고 바이섹슈얼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것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올한해는 무엇보다 나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같다.
당당한 바이섹슈얼 캔디를 위해.
나는 바이섹슈얼, 양성애자이다.
요즘들어 더 열심히 되뇌이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려고 하는 나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지렁이에 들어간 이후,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회의를 할 때마다, LGBT를 함께 이야기 하자는 자리에서 의도하지 않게빠지는 성전환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 게이,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의 잊고 있음에 분노하기도 하고, LGBT에는 게이, 레즈비언 뿐 아니라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도 들어가는 것임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목소리에는 내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전환자는 이야기 했지만, 정작 나의 정체성인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는 많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바이섹슈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그 삶을 소위 말하는 일반들안에서가 아닌 LGBT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큰 모험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바이는 언젠가는 떨어져나갈 사람으로 인식되고, 거부당하고 있는것이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니까.
여자친구들을 짝사랑하면서, 그리고 사귀면서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상당히 고민도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보고 고민해 봐도, 나는 바이섹슈얼이었고, 계속 바이섹슈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사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여자 만나면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해도 되는거잖아"라는 류의 말조차 듣기가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그냥 말하기만 편한거잖아. 그렇게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 한쪽 구석이 계속 서걱거릴게다.
바이섹슈얼로 살아감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 레즈비언의 인권, 비혼으로 살아감, 게이로 살아가는것, 그리고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것에 대해서는 뭔가, 조금씩 그래도 감이 잡히는 것도 같은데, 양성애자로 살아감을 이야기 한다는건에 대해서는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냥 내가 살아온것이 바이섹슈얼의 삶일텐데, 그것을 말로,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줄은 몰랐다. 이성애자로서의 삶에서 오는 고민과 동성애자의 삶에서 오는 고민을 모두 짊어진 채 살아가야하는 것. 이전의 누군가를 사랑했었던 나의 과거를 상대편이 불편해 할까봐 쉽사리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는것 또한 바이섹슈얼의 삶인게 아닐까.
나도, 당당한 바이섹슈얼이고 싶다.
지난 10월 커밍아웃데이에서 "나는 바이섹슈얼이예요"라고 말했던 그때처럼, 모두에게 당당한 바이섹슈얼로 서고싶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가 바이라고 말하는것이 조금 불편하다. 차라리 성소수자라는 단어 속에, LGBT라는 단어 속에 숨어서 아무것도 아닌척하며 사는것이 조금은 더 편한것만 같다. 레즈비언으로 패싱되는 지점에서는 그냥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가끔은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이유로 불편해지는 지점들이 있으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바이섹슈얼로 살아가는것. 그리고 바이섹슈얼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것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올한해는 무엇보다 나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같다.
당당한 바이섹슈얼 캔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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