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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GA(International Lesbian Gay Bisexual Trans and Intersex Association)의 컨퍼런스에 가게 되었다.
지난 The WorldPride Human Rights Conference 2014 이후 두번째 세계적인 컨퍼런스 참여.
토론토에 다녀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정말 많아졌었고, 그 후에 일가 컨퍼런스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뭔가를 또 배워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또 지원을 받게 되었다.
토론토에 갈 때는 한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과 월드 프라이드를 구경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면, 이번엔 조금은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간다.
올해 일가 컨퍼런스의 주제는 De-colonizing our bodies 이다. 몸의 탈식민지화? 정도 되는건가? 몸에 새겨지고, 혹은 몸을 욕망하는 것에 대한 낙인과 고정관념, 지배 구조에서의 해방 과정, 그리고 그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행될 것이라는 (확실치는 않은 변역을 통한 ㅠ)설명을 읽어본다.
트랜스젠더 운동을 하면서 "몸"은 정말 다양한 위치로 놓여기도 하고, 이끝에서 저끝까지의 고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는 주제이다. 한국에서 트랜스와 몸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인가? 라는 고민을 하기도 하고, 이미 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논의가 나오고 있기도 한데 나는 이것에 대해 아직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나? 라는 생각도 들고, 혹은 나는 이미 그 논의의 속에 있는 것인가? 나는 내 생각이 있는건가? 없는건가? 나는 그 욕망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비판하고 있고, 어떤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가에 대해 계속 되풀이하며 생각해 본다.
세계는 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거기에 가서 어떤걸 배워올 수 있을까?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고 또 어떻게 받아올 수 있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기에 이어 늘 그렇듯 한국을 비우는 열흘동안 내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들과, 찝찝하지만 남겨둘 수 밖에 없는 일들을 분류하는데도 골치가 아프다.
이 시점에, 이 상황에 내가 이렇게 훌쩍 컨퍼런스를 핑계로 한 외유를 가는게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있고, 나를 다지는 시간을 가지는게 필요하다면 가는게 뭐 어떻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스페인어도 잘하고, 한국의 상황도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쟁쟁한데 내가 가서 한국의 어떤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을지 무섭다. ㅠ_ㅠ
스페인어.... 난 하나도 못하는데 엉엉엉 ㅠ_ㅠ
한국에 돌아와서 또 이 모든 것을 잘 나누고 싶다. 전 세계의 성소수자 운동의 방향, 시각, 고민거리, 그리고 한국에서 배워야 할 점, 한국에서 차용하고 싶은 것, 국제 운동으로 함께 할 수 있는건 뭐가 있을지도 나누고 싶다.
OECD국가인 한국이라서 한국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외국 행사에 지원금을 받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쉽게 얻은 기회가 아닌만큼, 스스로 짓누르는 마음의 압박이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다녀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지원금을 받아 프로젝트를 하고, 해외에 나가게 되었다. 어떤 이에겐 지긋지긋한 현실이고, 어떤 이에겐 꿈일지도 모르는 나의 현재.
내 앞을 다져온 활동가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음에 또 새삼 고마워진다. 활동을 지지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후원인분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올해 내내 잦은 해외 탈출을 선언하는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기꺼이 내 일을 나눠가져주는 센터 활동가, 재단 활동가, 조각보 기획단들 모두모두 고마워요 ㅠ_ㅠ
부침이 많은 한해이다. 매년 굵직한 이슈가 터져나오고 활동가들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 지치고 함들텐데, 서로에게 힘받으며, 서로를 지지하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한발한발 계속 함께 걸어가는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있어서, 나도 안심하고 이 길을 걸어간다.
컨퍼런스 간다는 소개로 시작해서 고민을 지나 사람들과 활동에 대한 간증으로 마무리;;;
여러분, 성적소수자 인권운동, 정말 재밌어요! 정말 의미있어요! 정말 신나요! 너무 좋아요!
잘 다녀올께요~
2014.10.25 ~ 2014.11.04 Mexico city.
몇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써본다. 논문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2008년 입학, 2010년 2월 수료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매년 매학기마다 나는 논문을 시도했고, 썼고, 또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 긴 시간동안 사실 내 머릿속을 맴돈 질문은 "나는 왜 논문을 쓰려고 발버둥치는가?" 였다.
1. 부채까지 만들어준 학비가 아까워서
2. 석사 자격증이 있으면 나중에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3. 지금껏 기다려주고 지지해주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4. 이 주제의 글은 꼭 써야하는 글이므로
5. 안쓰면 낙오자가 되는것만 같아서
그런데,
1-1. 학비가 아깝지 않다. 난 대학원에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2-1. 석사 자격증 없어도 내 인생은 괜찮을 것이다
4-1. 논문으로 안써도 이 글은 꼭 써내고 말 것이다. 사실은 이 글은 여성학 논문으로 쓸 글이 아니다
5-1. 논문 안쓴다고 낙오자가 아니다
논문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다. 평생 찝찝함에 달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평생 후회하고 찝찝해도 맘 편히 살고싶다.
어떤 타로 카드는 나에게 논문을 쓰면 내가 교황이 될 것이라 했다. 난 교황 안해도 괜찮다.
그리고 3-1. 친구들과 애인에게 논문을 쓰지 않아도 날 계속 좋아해주고 사랑해줄꺼냐고 물었다. 난,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웠나보다. 하지만 당신들이 날 좋아해주는 것은 나의 논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당신들이 주었던 지지가 고맙고 논문으로 보답하지 못해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분명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랑을 보답할 길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가 미안한지 잘 모르겠지만 자꾸자꾸 엄마에게 미안하긴하다. (대학원 입학했다고 말했을 때 "너같이 공부하는거 싫어하는 애가 무슨 대학원이냐"라던 엄마말은... 옳았다;;; 부모말 들어서 손해볼 것 없다는 말은 그럴때 쓰는 거였나보다)
지도교수님께 등록일을 넘기고 전화를 드렸다. 추가등록일도 한참 지나고 빼도박도 못하게 될때쯤 선생님을 만날 것 같다. 뭐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다행이다.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때의 나는 죽은 눈을 하고 있었다. 대학원을 가서 인생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났고, 내가 하고싶은게 뭔지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얻었다. 대학원은 나에게 삶을 지속시킬 힘을 충전할 수 있었던 나를 살려낸 공간이었다. 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오랜 시간 아쉬울 때 써먹었던 학생 타이틀을 놓는다. 이젠 유예시켜놓았던 욕망과 도전의 봉인을 풀어보아야겠다.
잘, 살아보자.
지렁이 활동을 했을때는 무모했고, 그만큼 용기도 있었고, 그만큼 뻔뻔했던 것도 같은데,
몇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소심하고, 조심스럽고, 두려운 것이 많아졌다.
그만큼 아는 것도 많아진 것일까? 라는 기대를 조금 해보기도 하지만 아니,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장담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두려워졌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재단하고, 저울질한다.
무심코 내뱉은 말을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 없이) 되뇌이고, 자책하고, 비하한다.
신중해진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소심해진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당면한 "나의 할일"을 제외하고는 외면하고싶어진다.
괴롭고, 힘들고, 어렵고, 난해하고, 부담스럽다.
그것들이 내가 해 나가야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자꾸 외면하게 된다.
내가 "성자"가 될 수 없음을, 누구도 "성자"는 될 수 없음을 재 확인하면서부터,
성자가 될 수 없는 나는, 힘이 없는 나는, 그저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당당하고, 뻔뻔하고 싶다.
더 많이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