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단상.

experienced 2008/06/10 02:12
생각해보니, 집회에 관한 내 첫 기억은 불타는 집과, 매캐한 연기이다.

 자라온 지역의 특성상, 그리고 그당시 대학교 앞이라는 우리집 위치의 특성상, 초등학교때부터 집회/시위/데모(어떤 단어가 적절한건지 모르겠다)를 꽤 많이 봐 왔었다. 국민학생이었던 우리들의 필수품은 물에 적신 손수건이었고, 콜록거리면서도 옥상에 올라가서 그들을 바라보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도 살벌한 시위가 한창이었고, 때마침 아파트 옥상에 올라간 나에게 보였던 광경은 근처 집의 지붕이 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정확한 기억인지도 이제는 확실하지 않지만, 화염병을 맞고 타고 있던걸 분명 본게 아닐까...한다.
 
 그래서 였을까? 수 많은 시위 참여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학교 다닐때의 나는, 단 한번도 외부 집회에 참여를 해 본 적이 없다.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또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을 보면서 '정말 저게 합법적인걸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정도?

하지만, 늘 알 수 없는 부채감은 나를 감싸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심하게 내 가슴을 덮었던 때가 상암 홈에버사태때 였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들어가지 않은 나에 대한 죄책감은 온몸을 훑고 지나갔고, 아마도 그때...다음에는 꼭 가겠노라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사실은 두려웠다. 티비에는 온통 무서운 이야기 뿐이고, 주위에는 연행되는 사람들과 다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급기야 동생은 며칠전에 연락두절... 혼자 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가야한다. 가고싶다와는 또 다른 "무섭다"라는 감정. 그리고 스스로의 비겁함에 느껴지는 자괴감.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 생중계를 보다가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첫 광화문 진출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같이 갈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혼자 간다는게, (가면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 뻔함에도..) 가서 무슨일이 생기면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게 나를 공포감으로 몰아넣었었다.

그렇게 참여한 첫 촛불집회 참여. 무지개 깃발 아래 함께 서서 구호를 외치고, 같이 분노했다. 그들이 간 뒤에도 차마 나는 돌아갈 수 없어, 거리를 서성이고 다시 또 아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였다.  그렇게 만난 활동가 M과 A. 아침까지 그들과 함께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걱정도 하고.... 그렇게 12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무서웠지만, 다녀오길 잘 했다 싶다. 경찰이 눈앞에서 뛰어올때는 정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다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아파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이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아름다웠던 공간이었다.
유쾌하게 나를 웃게 해준 A, 그리고 계속 담담한 모습을 보여줬던 M.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났던 많은 활동가 친구들. 며칠밤을 새고 피곤이 가득한 모습에도 눈만은 반짝이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들 뿐이 아니지... 어디선가 계속 나타나는 먹을 것들. 가방에 들어가 있던 작은 비타민 과자도 나눠먹는 사람들, 새벽에 나타난 한약과 낮에 나타난 일사병 방지용 반팔티. 아낌없는 나눔의 모습도 감동이었고...
거리낌없니 나와 자신을 이야기 하던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도.....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나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주고 있는 집회이지만, 나는 내일 다시 거리로 나선다. 이미 내 마음에서부터, 거리 한켠에서부터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2008/06/10 02:12 2008/06/10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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