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워가 줄래
노래 하키(Hockee)
내가 원하는건
너의 펫
나를 주워가지 않을래
선택은 한번
단 한분의
주인님으로 섬길게
그렇게 영리하진 않지만
웃겨줄거야
기분이 우울한 날에도
날 좀 주워가
여기서 기다릴게
날 좀 주워가
절대 물진 않을게
그리 나쁘진 않을거야
날 좀 주워가
내가 보이지 않니
날 좀 주워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마@
다시 귀에 막막 들어오면서 다시 미친듯 듣고 있다.
그렇게 누가 날 좀 주워갔으면 하는건지 에헤-
주워가 줄래
노래 하키(Hockee)
내가 원하는건
너의 펫
나를 주워가지 않을래
웃겨줄거야
기분이 우울한 날에도
날 좀 주워가
여기서 기다릴게
날 좀 주워가
절대 물진 않을게
그리 나쁘진 않을거야
날 좀 주워가
내가 보이지 않니
날 좀 주워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마@
그 사람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때, 그때의 나른한 느낌을 난 잊을 수 없다.
붕어와 맞먹는 기억력을 가진 내가 그 오래된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기묘한 일이다.
그날은 아마도 따뜻함이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봄날이었다. 그 사람과 나는 한가로이 길을 거닐고 있었다. 그 사람과 나는 알게 된지 한 달 쯤 된 사이였다. 우연히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있잖아. 잘 모르지만 만나면 "아~ 안녕 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하며 반가운 듯 인사를 나누는 그런 사이.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린 정말 별 사이도 아니었다는 거다. 그저 날이 따뜻했고,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한가로이 거리를 좀 거닐 시간이 생겼을 뿐이다. 그 사람 또한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함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특별하다. 나는 학교에서 움직이는 일 이외에 애인을 제외하고는 함께 오랜 시간 거리를 거닐어본 기억이 없다. 함께 걸을 필요가 없는 거리를 걷는 건, 일종의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날같이 날씨조차 따뜻한 날은 그 따스함조차 함께 나누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따스함을 함께 나누는 사람. 그게 그날의, 그리고 지금의 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본래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어제도 한밤중에 뛰어나가 한강을 따라 한 두어 시간을 걷고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스산한 바람의 냄새가 나를 부르는 거다. 뭔가 유치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만큼 난 그 냄새에 취했고, 미친 듯 걷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는 거리에 도착해 있어 택시를 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튼, 이렇듯 나에겐 걷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 시간도 여유가 있는데 전 사무실까지 좀 걸어볼까 봐요"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뜨악한 모습을 뒤로하고 "앗! 그래요? 그럼 저도 같이 걸어요."라는 대답을 해주는 사람을 보는 순간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종로에서 시청을 거쳐 홍대까지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그 긴 시간을 그 사람은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으로 함께 해주었다.
그렇게 걷는 내내 나는 혼자 신이 나서 뭔가 잔뜩 떠들어댔었고, 그 사람은 웃으며 응수를 해줬다. 그렇게 걷고 걸어 도착한 한낮의 홍대 앞 놀이터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밤의 시끌벅적함에만 익숙해졌던 탓일까. 나름의 고요함을 가지고 있는 그 기이한 공간에서 몇 시간 동안 걸었다는 자각과 함께 온몸이 쳐지기 시작하는 거다.
퓨즈가 나간 로봇마냥 나는 그렇게 넘어지지 못해 앉아있었다. 그 내리쬐는 햇살을 여과 없이 맞으며 광합성을 하는 이파리인 마냥 그저 그렇게 멍- 하니 한참을 정신없이 있었나보다. 내 머리로 손이 내려왔다.
햇살사이로 내려온 손이 내 머리에 안착했고, 가벼이 쓸어 넘기듯 내 머리를 토닥여줬다. 그 순간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되어 그 사람의 손에 머리를 부비며 충만한 나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햇살 안에는 내가, 햇살이 가려진 곳에는 따스한 그 사람의 손이 있었고, 그 손은 나의 모든 감각 속으로 파고들어와 예민하던 그 감각들의 끈을 하나하나 풀어 주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아니 내 머리는 그 사람을 아니 그 사람의 손을 마음깊이 원하게 되었다. 그 느낌은 너무도 강렬해서, 뼛속까지 파고들어 나를 도취시켰으며 그 중독이란 어떠한 환각제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 더 커다란 것이어서 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여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처절하게 원하게 되었고, 그 간절함은 인간의 도덕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라 말할만큼의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그 '찰나의 순간'에 말이다.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시간 현재 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라 불리우는 존재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을 따라야 아무런 불편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의 손을 - 이 사람이 아니라 - 원하고 있는것이다. 그것도 이 사람의 손이라기 보다 이 사람의 손이 나에게 준 그 나른한 느낌만을 지속적으로 원하고 있는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첫 생각은 그 손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그 손을 어떻게들 잘라내어 내가 소유하는것. 하지만 그런 방법은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 따스함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었다. 잘라낸 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르말린 처리를 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면 그 손은 더이상 움직일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두번째 방법은 그사람을 계속 만나는것이었다. 그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은 나에게 그 손의 따스함을 지속적으로 전해줄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방법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나는 원치 않는 감정적 신체적인 소모를 계속 해 나가야만 할 것이었다. 과연 그 방법을 현명하다 말 할 수 있는가.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하늘은 붉어지던 시간을 지나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시간은 또 언제가 될지 모르고, 내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어떻게든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당장 그 손을 포기한다 생각하기엔 나의 간절함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를 잃지않고, 내 것을 잃지 않고 그것을 얻는 방법. 설사 그에게 치명적이 되더라도 나는 그 것을 얻어야만 했기에 그 순간의 나는 악마와의 계약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난 선택을 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따스함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저 그 손을 원할 뿐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그 손만을 가지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따윈 없었던 것이다. 손만을 원한다면 손만을 가져야 하는 것이었고, 나는 다른 모든것을 포기하더라도 첫번째 선택 이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그 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기가막힌 발생을 생각해 낸 나에게 찬사를 보내며 나는 그 밤을 손과 함께 보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나는 나의 잘못된 결정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내가 원하는 그 손은 적당한 높이에서 나에게 안착해야만 하며, 그 날과 같은 햇살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걷고난 후 피곤해진 나의 상태에서라야만 갈구되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시간동안 고민하고 쥐어짜낸 이것들은 다 무어란 말인가. 결국은 전후를 망각한 과도한 욕망과 집착만으로 쓸데없는 고생을 했다고 밖에 할 수 없게 되어버린것이다.
사람의 욕망이란 이렇게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일까. 지금의 나는 후회하고 후회하며 그 기억에 파묻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
나의 나른했던 봄날에 대한 기억은 단지 순간의 찰나의 기억이었을 뿐이다.
그 순간과 찰나의 욕망은 한가지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그 복합적인 모든것들에 대한 간절함이었음을 왜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일까.
결국 나는 그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서 허우적대며, 말라비틀어진 손가락들을 만지작 거리는 것을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의 욕망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가 주지 못했으며, 그 선택의 끝에서 나는 절망하고 절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욕망. 선택. 그리고 후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되풀이.
5.18이 돌아왔다.
작년에도 이맘때쯤 5.18이 돌아온다는 글을 쓴적이 있다.(이것이 작년에 쓴 5.18에 관한글)
작년도 올해도 별반 다를 것은 없다. 서울은 여전히 조용하고, 인터넷에서는 개념없는 이들이 헛소리를 한다.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정치적인 색깔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아무리 사회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나는 5.18이 되면 분노하고 서글퍼하며 감상에 젖기도 한다.
20여년이 넘게 살아오며 세뇌된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단지 내가 '광주' 출신이기 때문에 5.18을 그토록 열심히 생각하는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이것은 세뇌의 문제라기보단, '기억'의 문제가 아닐까. 내가 자라며 보아온 것들, 내 눈이 내 몸이 내 무의식이 기억하는 것들은 나에게 잊지 말라 말한다.
그렇다. 잊고 싶다고 잊혀지는 것일 수가 있을까. 과거이자 현실이고 또한 미래일 수 밖에 없는 기억들.
모든이에게 '좋은 말'이 나올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역사적 맥락이고 뭐고간에 사람들의 생각은 각자가 다 다르니까. 하지만, 잊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적어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헐뜯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 지워지지않는 흉터이고 상처이고 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나에게서마저 사라지지 않는 이 역사의 흔적을,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 5.18 역사알기(자료출처 : 5.18 역사재단)
- 발생배경 / 항쟁의의 / 상황일지 / 전개과정 / 관련현황
* 강풀의 '26년'
* 영화 '화려한 휴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글을 읽고 싶다.
그런 글을 읽게된다면 뭐든지 할 것만 같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버렸다.
요즈음은 아무 생각도 필요없는 것들만 보고 읽었다.
가슴이 막히는 글들만 보고 있다.
이렇게 가슴이 막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