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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바꿨어요.

Notice 2013/04/18 16:39
정말 어마어마한 각고의 노력 + 원 스킨 제작자님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스킨을 변경했습니다.

뭔가 좀 더 산뜻한 느낌이지 않나요? :)

좀 더 발랄하게 살아보렵니다.

후후
2013/04/18 16:39 2013/04/18 16:39

저번에 어디선가 삶의조각보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것이 쉽지는 않은 일임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편견과 감수성을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몇주가 지났는데, 여전히 찝찝하다.

다른방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자신이 없는것일까 싶기도 하고...

"어떤 트랜스젠더들은 한국의 법/제도때문에 힘들게 살아간다."
"어떤 트랜스젠더들은 서류상 성별정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보통의 삶이 힘들다."
"어떤 트랜스젠더들은 수술을 원하는데 그 수술은 너무 비싸고, 하지만 그들은 호르몬을 한 상태- 서류상의 성별과 자신의 성별이 외관상 다르게 보이는 상태-에서는 적정한 직업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트랜스젠더가 불쌍하다"로 치환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너무나 이런 이야기들이 잘 먹힌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가 불쌍하다는게 아니라, 불쌍하기만 한 사람들인게 아니라, 저런 어려움들을 만들어내는 불편한 감수성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게 문제인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내 생각처럼 이야기 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사례가 나오는 순간 트랜스젠더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트랜스젠더가 불쌍한가?

난 불쌍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편하거나, 짜증이 나거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회적 억압을 받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게 불쌍한건가?

아니, 불쌍하다는 기준이 뭘까?

아니, 불쌍한건 나쁜걸까? 왜 난 불쌍한것을 당연시 부정적인 감정으로 연결시키는 거지?

그래, 불쌍함은 측은함과 연결이 된다. 하지만, 난 사회의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시선이 측은하고 그래서 "도와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불합리한 시선"을 사람들이 인지하고 바꾸어 나가야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었으면 하는거다.

그들이 불쌍한게 아니라, 어떠한 너희가 잘못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에효.. 글을 쓰다보니 약간 정리는 되네.. 하지만 나의 발표도 그러했을까?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인걸까? ㅠ_ㅠ 5월에 있을 강의에는 저런 부분을 꼭 넣을 수 있게 고민해봐야겠다.  

ps. 켁. 글을 다 쓰고 나니, 대상화시키지 않고 설득하기와 글이 맞는것인가 고민이 되긴 하지만.. 일단 패쓰-ㅅ-;


2013/03/12 20:29 2013/03/12 20:29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는올해부터 3년간 트랜스젠더 인권지지기반 구축을 위한 삶의 조각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영상을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시작되어 조촐한 상영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와서 보면 좋을 듯 해요.

참고로 인원 제한이 걸릴 수 있으니 꼭 미리 신청해주세요~
2013/03/12 20:15 2013/03/12 20:15

새로운 곳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몇년간 나에게 가장 익숙한 곳이었고, 가장 편안한 곳이었고,

사실은 오랜 시간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전업 활동가"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기분이 막 새롭고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활동가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었다.

활동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부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현재 내 재정적 상황에서 활동가로 살겠다고 하는건 거의 "결의" 수준이어서,

편안한 삶까지는 아니어도 덜 힘든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의 본능으로 활동가는 차선책으로 두려는 생각도 꽤나 가지고 있었던게 사실.

그래서 한동안 구인을 위해 힘을 썼다.

1. 일반 회사 - 논문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 성적도 않좋고, 무엇보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자격조건이 안됨

2. 유명한 단체들 - 기업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단체들을 고민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과 너무 달라서 포기

3. 공무원 - 일단 내가 원하는 분야는 뽑지 않고, 내가 원하는 분야는 나를 거부함. -ㅅ-;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를 원하는 곳, 내 입맛에 딱 맞는 곳을 고른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생각했던게 익숙한 단체들이긴 했는데.....그쪽에서 날 받아주고 안받아주고를 떠나서, 이번에 어딘가에 들어간다면 오랜 시간을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니, 정말 생각하는게 많아졌다. 단체? 내가 원하는 운동 방향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운동은 무엇인가.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입장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자 하는 운동과 그 단체의 운동의 주체가 다르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운동을 하면서 단체의 운동도 함께 해 나갈 수 있을까 등등등....

그래서 욕심을 버리게 되었다. 아니, 어쩜 그냥 욕심을 채운 것일지도 모른다.

활동가를 한다면 하고 싶은 운동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니까.

그래서, 둥지를 틀었다.

계속 알바를 찾아야 할 수 도 있고, 금전적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지만, 늘 그래왔듯이 필요한 돈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며 ㅎㅎㅎ

행복하고 좋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아지고, 생각하는 것도 즐겁게 많아진다.

열심히, 즐겁게, 행복하게 활동하고 살겠노라.
2013/03/09 14:58 2013/03/09 14:58

몇년만에 한해를 돌아보고 2013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1. 2012년은 버라이어티한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꺼다. 2월에 살림이 끝나고, 3월부터 새 직장에 출근, 그리고 8월말을 끝으로 또 일이 끝나고 쭈욱- 논문.

2. 6개월간 다녔던 새 직장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분노하게 하기도 했지만, "일반 사회" 진입시 겪게 되는 어려움, 사람들과 내가 섞여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능성 확인 등을 남겨줬다. ㅅㄹ에서 일할때는 그래도 친구들이 늘 곁에 있었고, 빠르지 않게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그런데 6개월직장은 완벽한 일반 사회. 내 눈치를 보면서도 성적인 농담은 간간히 나오는 50대이상의 남자들이 가득했던 곳.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나를 놓지 못하게 했던 일에 대한 즐거움 등등.. 뭐라고 해야할까... 정말 생각이 많아진 곳이기도 했다.

3. 논문을 정말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2월 졸업이 실패했다. 2월까지 논문을 마무리짖겠다고 지도교수님과 합의하긴했지만, 그래도 그 절망감과 좌절은 생각보다 컸다. 내가 정말 논문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다. 하지만, 다시 결심을 했다. 잘 해봐야지...

4. 트랜스젠더활동가로서의 정체화를 공고히했다. 전에 블로깅도 했으니 다른 말은 필요없을 듯.

5. 이 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갔다.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함께 했고, 힘든 시간을 제공했었고, 내 인생에 지워내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인생이 지나는 동안 중요한 사람의 한명이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오랜 시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고마웠다. 어느 시간동안은 그를 사랑했었고, 어느 시간동안은 그를 저주했었고, 그리워했고, 그 나머지 시간은 정리했다. 활동가의 입장에서 그를 존경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가 내 인생의 어느부분을 함께 한 사람임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며, 잊지 않을 것이나, 과도히 추억하거나 기억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6. 대선이 치뤄졌다. 대선 결과에 대한 저주와 절망과 우울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튼, 이걸 계기로 많은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2013년의 방향을 더욱 확실하게 결정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진 않다 흥.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2013년엔 더 열심히 살겠다.
2012/12/30 03:52 2012/12/30 03:52

2010년 중반에 써서 http://tqueer.com 이라는 웹진에 넘겼던 글. 당사자 운동에 관한 고민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ㅎ 지금도 이런 고민은 간간히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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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년, 소위 말하는 퀴어 활동판에 나는 덩그러니 내던져졌다. 그곳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가 있었고(스스로를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못만났다) 그 LGT 안에서도 정치적 포지션과 사회적 포지션에 따라 수많은 퀴어들이 나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첫 느낌은 신기함이었다. 우와앗! 세상에 이렇게 많은 퀴어들이 ‘활동’을 하고 세상에 이야기를 걸고 싸워나가고 있구나! 이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이 처음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퀴어’에 대한 범위는 넓어져 가고, 그에 따라서 수많은 생각의 시행착오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퀴어 활동가들은 과연 소수자 감수성이 뛰어난 것일까?라는 것이 고민의 시작이 되었다.

사 실 나에게 퀴어판에서의 퀴어는 대부분 ‘동성애자’를 일컫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성전환자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의 우리는 성전환자였지만……. 항상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을 할 때의 고민은 “왜 나는 성전환자가 아닌가?” 였다. 상담전화와 인터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죄송하지만, 전화 받으시는 분은 당사자이신가요?”, “당사자를 만나보고 싶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활동을 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경험하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할까라는 어이없는 생각도 했다. 나는 이 단체와 성전환자 이슈를 고민하며 열심히 활동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당사자와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중간고리 입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 지만 이런 고민들과는 또 별개로, 나 스스로에게도 ‘성소수자로서의 당사자성’은 꽤나 큰 것이었다. 어떤 연대 활동을 할 때였다. 당시에 참여하던 단체들 중에는 성소수자 단체가 아닌 곳들도 꽤 있었는데, 나는 그중 어떤 남자 활동가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은데,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당사자 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그 사람이 비성전환-이성애-남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그 분이 저 정체성에 들어맞는 분일 수도 있지만, 그런 질문을 한 나 스스로에게 든 생각은 좌절 그 자체였다. 당사자 단체에서 당사자만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나도 결국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니까. 또한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비성전환-헤테로 남성이나 여성이 퀴어 관련 단체나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면, 좀 더 높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게 되고, ‘당사자도 아닌 네가’ 여기서 ‘왜’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끊임없이 확인을 하고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지나고 나면 그러한 ‘이성애자’나 ‘퀘스처닝’인 사람들의 활동이나 정체성을 이 판 안에 아웃팅 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시달리곤 했다. 당사자만이 활동을 하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강박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활동을 할 때는, ‘당사자가 아님’을 알리고 그럼에도 당사자에 상응하는 정당성을 인증받거나, 혹은 그만큼의 열정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는 또다른 강박을 가져온다.

퀴 어운동판에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있으면서 계속해서 들었던 자괴감은 내가 어디에서도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트랜스젠더 운동을 할 때는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었고, 다른 퀴어 안에서도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소수자라는 이름 안에서 당사자인 나는 ‘우리 퀴어’ 안에서는 비당사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듯 했다. 내가 당사자인 혹은 저 안에서 호명되지 않은 다른 퀴어들의 자리는 없었다. 트랜스젠더들의 성적지향은 당연히 무시되었다. 비트랜스젠더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트랜스젠더 이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은 소수자조차 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퀴어 단체들의 회의 자리에서도 이런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소수자나 퀴어라는 말을 사용해서 회의를 시작해도, 결국 이야기는 ‘동성애자들’이라는 단어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동성애자가 모든 LGBTQ를 포함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동성애자”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드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동성애자가 아니라, 성소수자라고 말해주세요. 양성애자도 있고, 트랜스젠더 중에는 이성애자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이렇게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 퀴어 운동이 아니라 동성애자 운동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어 운동을 뭐라고 정의 할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퀴어 운동이 동성애자 운동은 아니다.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물론 한국 퀴어 운동의 시작은 동성애자 운동으로 시작했다 생각하지만, 지금은 동성애자의 문제 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정체성, 성적지향의 문제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런 문제의식이 드는 것 자체가 동성애 당사자성이라는 것이 성소수자 내에 얼마나 큰가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 지만 퀴어운동을 하면서 드는 가장 큰 고민은 동성애자로서의 당사자가 아닌 내 위치에서 ‘당사자 운동’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나 역시 어느 정도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당사자 운동에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레즈비언이 대다수인 자리에서 나 또한 “우리 레즈비언”이란단어를 즐기면서 내가 레즈비언인 양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뭐, 레즈비언하고 바이섹슈얼이 딱히 100% 다른 존재이기만 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내가 바이섹슈얼로서 퀴어라는 지위를 점유할 수 없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동성애자의 위치를 양성애자의 위치와 함께 가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것은 비성전환-바이섹슈얼로서의 피해의식과 스트레스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퀴어활동판에서 활동을 하는 다른 비성전환/비동성애(양성애자 혹은 이성애자 퀴어) 활동가들이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들의 자긍심 또한 클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렇다면 퀴어 운동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 해야 하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LGBTQQAI(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Questioning, Asexual, Intersex의 두문자어)라는 단어로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퀴어라는 상위분류아래에서 트랜스젠더의 다양한 성적지향과, 이성애자이지만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하는 이들의 정체성은 포함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포함이 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퀴어 감수성을 가지고, 다양한 퀴어의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 되는 것인가? 세상의 비성전환자 혹은 포비아적이거나 관심이 없는 이성애자를 제외한다면 다들 퀴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 퀴어운동인가? 퀴어적 감수성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과연 퀴어감수성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 쩌면 이러한 혼돈 속에 있는 것이 퀴어운동은 아닐까. 10년이 훌쩍 넘은 퀴어 운동이지만, 운동의 방향과 운동을 하는 사람은 계속 바뀌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또 다양한 고민을 한다. 변화를 고민하는 것,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고 바꾸려 노력하는 것. 말 같지도 않은 당연한 말이 퀴어운동을 이야기 하는 단순한 문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짜증과 불만을 토해내는 나의 말이 또 그 안에서 새로운 퀴어 운동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12/11/29 21:28 2012/11/29 21:28

오늘은 국제 트랜스젠더 기억의 날 입니다. (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Rememberance) 여러가지 이유로 사라져간 우리의 친구들을 오래오래 기억해주세요.

외국에는 http://www.rememberingourdead.org/index.html 우리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외국같은 혐오범죄가 커다랗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점점 더 혐오범죄가 외화되고 있다고 느껴지구요. (전에 남산의 트랜스젠더 혐오 폭행 같은 기사들이 나왔었죠) 혐오범죄가 아니라 생활고와, 사회에서 오는 우울증 등으로 세상을 달리 하는 이들도 기사화 되지 않을 뿐이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해주세요.

떠나간 그 한명을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떠나게 되었는지, 더이상 떠나는 이들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뭐가 있을 것인지 함께 고민해주세요.

죽은 이들을 매개로 살아있는 이들은 미래를 만들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빕니다.
2012/11/20 09:52 2012/11/20 09:52

삼가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바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故한무지를 추모하는 자리에 오신 분들

전화와 문자 등으로 염려해주시고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

아침 일찍 모여서 故한무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신 분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유족분들께서 경황없이 급히 해외 현지에 가셔야 했고 빈소도 마련하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저희들은 고민 끝에 '한무지'라는 이름으로서의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를 월요일에 마련하였습니다.

활동가로서 '한무지'뿐만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한무지를 알고 지냈던 다양한 분들이 와주신 고마운 자리였습니다.

저희도 급작스러운 일이었기에 한국에서의 추모식을 충분히 잘 준비하지 못 하였음에도

많은 분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셨고, 함께 격려해주셨고, 함께 눈물 흘려주셨고, 함께 그를 추억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그에 대한 추억과 그의 고민과 의지가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게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찾아오신 분과 연락주신 분들이 보내주신 추모와 애도의 모든 마음을 유족분들께 최대한 고스란히 전달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 지인들이 함께 해주었다는 얘기에,

그리고 백여 분의 이름이 적힌 방명록을 보시며, 또 이름을 적지 않으신 분도 많이 오셔서 명복을 빌어주었다는 소식에

유족분들도 매우 감사해하셨고 많은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모아주신 조의금 역시 소요 경비를 제외한 전액을 유족들께 전해드렸습니다. 당혹스런 일을 겪은 유족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고인은 유족분들의 뜻에 따라 아버님 산소 옆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한무지의 명복을 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 일동
2012/11/18 21:10 2012/11/18 21:10

처음으로, 내 본명을 써서 활동과 지식을 팔아 돈을 벌었다.
(여기서 팔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때,  선뜻 수락을 했던 것은 그간의 내 자격지심이 큰 몫을 했다.

2006년 이후 활동이란 것을 해오면서, 어느순간부터 나는 자격지심이 빠지기 시작했었다.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궜고, 너무나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어떤 것도 나의 전문분야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특히나, 지렁이가 해소를 결정하면서 트랜스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때는, 난 도대체 무슨 운동을  이제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바이에 대한 관심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당장 어떤 종류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가져가야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하고 있지만 무엇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상태를 스스로 바라보게 될 때마다, 주위의 열심인 활동가 친구들을 볼때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내색했으려나-ㅅ-) 내 자격지심 -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 이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 대학원 입학 이후 계속 준비하던 바이섹슈얼에 관한 석사 논문을 접고 트랜스젠더로 논문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다시는 트랜스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만) 하며 살았던 지난 몇년만의 정말 큰 결심이었다. 사실은 놓지 않고 있었던 트랜스젠더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욕구를 인정한 것이었고, 다른 이유들이 아닌 나의 욕구로 트랜스젠더 운동을 바라보고 가지고 가고 있음을 받아들임이었다.

그래서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정말 낚아채듯이 강의를 넙죽 받아먹었다.

큰 결심으로 본명을 내걸었다. 개인 활동가 캔디가 아닌 소속을 학교 이름을 쓴 것은 이 활동을 또 다른 종류의 공식적인 인생의 커리어로 가져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기도 했다. 강의록을 쓰고 PPT를 만드는 시간 내내 마음이 풍족했다. 뭔가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때의 두근거림과 비슷했던 것도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방법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는 것. 원했던 기회였고, 도전해보고 싶었던 방법이었다.

뭐, 그래서... 드디어 오늘 강의를 했다.

길지 않은 시간 25분이었지만,  낯선 대중들 앞에서 처음엔 고개도 못들고 목소리도 달달달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 강의도 끝나고 질의응답도 끝나고 사람들과 마주했을때, 가만히 다가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이 사실은 미치도록 감사했다.
이 사람들의 이해도와 관심도와 그런거 다 필요없이, 진심이든 빈말이든 다 필요없이 강의 잘 들었다는 인사가 어찌나 감사하던지.

강의에 대한 자신감의 문제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해왔던 지난 몇년간의 활동이 의미있는 것이었다는 스스로의 안심이 크다. 내가 해왔던 활동이, 그냥 시간지내옴이 아니었다는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던지, 오늘의 이 경험이 나에겐 용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이젠 좀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트랜스젠더 활동가이다.


2012/11/18 21:06 2012/11/18 21:06


안타까운 소식을 알리고자 합니다.

前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인 한무지님께서 지난 11월 1일경 운명을 달리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계신분들도, 이름만 들어본 적이 있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인연을 가지셨던지, 아니 인연이 없으시더라도 한무지가 하늘에서는 평온하기를 함께 기원해주세요.


고인이 외국에 체류하시던 중에 생긴 일이라 현재 한국에 들어오시지 못한 상태입니다.

유체를 수습하기 위해 유족분들께서 출국하셨고, 빠르면 다음주 초에 귀국하실 예정입니다.


1. 유족분들이 귀국하시는대로 빈소가 서울 시내에 마련될 것이며, 장례는 2일장으로 간소하게 치뤄질 예정입니다.

2. 前지렁이 활동가들 및 고인의 지인들은 발인을 마친 후 저녁, 함께 모여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 또한 마련하고자 합니다.

3. 장소와 날짜가 결정되는대로 다시 한 번 소식 전하겠습니다. 오셔서 고인의 가는 길을 함께 해 주세요.


부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前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 일동 드림.
2012/11/09 01:46 2012/11/0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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