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논문을 쓰지 않기로 결정하다.

몇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써본다. 논문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2008년 입학, 2010년 2월 수료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매년 매학기마다 나는 논문을 시도했고, 썼고, 또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 긴 시간동안 사실 내 머릿속을 맴돈 질문은 "나는 왜 논문을 쓰려고 발버둥치는가?" 였다.

1. 부채까지 만들어준 학비가 아까워서
2. 석사 자격증이 있으면 나중에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3. 지금껏 기다려주고 지지해주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4. 이 주제의 글은 꼭 써야하는 글이므로
5. 안쓰면 낙오자가 되는것만 같아서

그런데,
1-1. 학비가 아깝지 않다. 난 대학원에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2-1. 석사 자격증 없어도 내 인생은 괜찮을 것이다
4-1. 논문으로 안써도 이 글은 꼭 써내고 말 것이다. 사실은 이 글은 여성학 논문으로 쓸 글이 아니다
5-1. 논문 안쓴다고 낙오자가 아니다

논문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다. 평생 찝찝함에 달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평생 후회하고 찝찝해도 맘 편히 살고싶다.

어떤 타로 카드는 나에게 논문을 쓰면 내가 교황이 될 것이라 했다. 난 교황 안해도 괜찮다.

그리고 3-1. 친구들과 애인에게 논문을 쓰지 않아도 날 계속 좋아해주고 사랑해줄꺼냐고 물었다. 난,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웠나보다. 하지만 당신들이 날 좋아해주는 것은 나의 논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당신들이 주었던 지지가 고맙고 논문으로 보답하지 못해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분명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랑을 보답할 길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가 미안한지 잘 모르겠지만 자꾸자꾸 엄마에게 미안하긴하다. (대학원 입학했다고 말했을 때 "너같이 공부하는거 싫어하는 애가 무슨 대학원이냐"라던 엄마말은... 옳았다;;; 부모말 들어서 손해볼 것 없다는 말은 그럴때 쓰는 거였나보다)

지도교수님께 등록일을 넘기고 전화를 드렸다. 추가등록일도 한참 지나고 빼도박도 못하게 될때쯤 선생님을 만날 것 같다. 뭐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다행이다.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때의 나는 죽은 눈을 하고 있었다. 대학원을 가서 인생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났고, 내가 하고싶은게 뭔지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얻었다. 대학원은 나에게 삶을 지속시킬 힘을 충전할 수 있었던 나를 살려낸 공간이었다. 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오랜 시간 아쉬울 때 써먹었던 학생 타이틀을 놓는다. 이젠 유예시켜놓았던 욕망과 도전의 봉인을 풀어보아야겠다.

잘, 살아보자.
2014/08/29 14:28 2014/08/29 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