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포스트가 2016년이니 거진 5년을 방치하고 있는 블로그다.
매년 도메인과 서버를 갱신하고 또 갱신하는 이유를 스스로도 이해하고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
40이 되었다.
30을 기다리던 마음보다 좀 더 긍정적이지만 절박하게 기다렸던 40대는, 늘 그렇듯이 아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2020년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코로나를 제외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기도 할게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의 40대의 시작, 이 10개월이 올해와는 달랐을까? 어쩌면 달랐을 수도 있겠다. 적어도 몇번의 여행과 몇번의 출장은 더 갔겠지. 그뿐이다. 2019년 6월 이후로 내 삶은 약간은 멈춰있는 느낌이다.
내 삶을 당겨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 더 많은 계획을 하고 활동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기약을 할 수 없는 길 위에 놓여진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활동과 현재의 상황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사실 활동도 어떤 부분은 기약할 수 없는 길 위에서 길을 만들어가고, 기약의 길을 만들어 가는게 아닌가.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이 상황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걸까. (물론 아니다.)
나보다 더 답답할 사람을 앞에 두고, 나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지는 순간, '이렇게 생각할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보호자의 삶이란 어때야 하는걸까. 돌봄이란 무엇까지를 담보해야 하는걸까.
보호가 끝나는 시점은, 돌봄을 끝내는 시점은 존재하는가.
인생을 다 바쳐 (요청하지 않은) 돌봄을 행하고, 그 돌봄에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라는 분노가 차오를 때가 있었다. (보통 티비나 글을 보며 자식들에게 저런 요구를 하는 부모들을 볼 때 였을것이다)
하지만 또 댓가없는 돌봄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싶기도 하다. 감정적 댓가가 채워졌다면 다른 더 큰 요구를 했을까 싶기도 하고. 감정적 댓가면 충분한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부모자식 관계는 특별히 다르게 바라봐야 하나 싶고, 그래서 파트너관계는 어떤건가 싶어진다.
현재 나의 돌봄 상태/방법에 대해서는 1.만족스럽지 않고, 2. 더 잘하고 싶고 3. 그럴 수 없을 것만 같고 4. 그래서 짜증이 난다.
파트너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부분은 만족함에도, 돌보는 자로서의 스스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비교하게 된다랄까?
온몸을 다 불사르는 보호자일 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능력이 없거나, 그렇게 하지 않거나/못하는 나를 스스로 비난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매일매일 일어난다.
보호. 명사. - 위험이나 곤란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
돌봄. 명사 - 건강 여부를 막론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거나 증진하고,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
돌보다. 동사 - 관심을 갖고 보살피다
보살피다. 동사 -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며 돕다. 이리저리 보아서 살피다. 일 따위를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거나 맡아서 하다.
보호/돌봄/보살핌은 돌림말처럼 돌고 돈다.
나는 저 세가지의 어딘가에 비스듬히 걸쳐 있는 것만 같다.
(일단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