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바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故한무지를 추모하는 자리에 오신 분들

전화와 문자 등으로 염려해주시고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

아침 일찍 모여서 故한무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신 분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유족분들께서 경황없이 급히 해외 현지에 가셔야 했고 빈소도 마련하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저희들은 고민 끝에 '한무지'라는 이름으로서의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를 월요일에 마련하였습니다.

활동가로서 '한무지'뿐만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한무지를 알고 지냈던 다양한 분들이 와주신 고마운 자리였습니다.

저희도 급작스러운 일이었기에 한국에서의 추모식을 충분히 잘 준비하지 못 하였음에도

많은 분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셨고, 함께 격려해주셨고, 함께 눈물 흘려주셨고, 함께 그를 추억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그에 대한 추억과 그의 고민과 의지가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게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찾아오신 분과 연락주신 분들이 보내주신 추모와 애도의 모든 마음을 유족분들께 최대한 고스란히 전달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 지인들이 함께 해주었다는 얘기에,

그리고 백여 분의 이름이 적힌 방명록을 보시며, 또 이름을 적지 않으신 분도 많이 오셔서 명복을 빌어주었다는 소식에

유족분들도 매우 감사해하셨고 많은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모아주신 조의금 역시 소요 경비를 제외한 전액을 유족들께 전해드렸습니다. 당혹스런 일을 겪은 유족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고인은 유족분들의 뜻에 따라 아버님 산소 옆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한무지의 명복을 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 일동
2012/11/18 21:10 2012/11/18 21:10

처음으로, 내 본명을 써서 활동과 지식을 팔아 돈을 벌었다.
(여기서 팔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때,  선뜻 수락을 했던 것은 그간의 내 자격지심이 큰 몫을 했다.

2006년 이후 활동이란 것을 해오면서, 어느순간부터 나는 자격지심이 빠지기 시작했었다.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궜고, 너무나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어떤 것도 나의 전문분야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특히나, 지렁이가 해소를 결정하면서 트랜스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때는, 난 도대체 무슨 운동을  이제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바이에 대한 관심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당장 어떤 종류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가져가야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하고 있지만 무엇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상태를 스스로 바라보게 될 때마다, 주위의 열심인 활동가 친구들을 볼때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내색했으려나-ㅅ-) 내 자격지심 -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 이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 대학원 입학 이후 계속 준비하던 바이섹슈얼에 관한 석사 논문을 접고 트랜스젠더로 논문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다시는 트랜스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만) 하며 살았던 지난 몇년만의 정말 큰 결심이었다. 사실은 놓지 않고 있었던 트랜스젠더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욕구를 인정한 것이었고, 다른 이유들이 아닌 나의 욕구로 트랜스젠더 운동을 바라보고 가지고 가고 있음을 받아들임이었다.

그래서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정말 낚아채듯이 강의를 넙죽 받아먹었다.

큰 결심으로 본명을 내걸었다. 개인 활동가 캔디가 아닌 소속을 학교 이름을 쓴 것은 이 활동을 또 다른 종류의 공식적인 인생의 커리어로 가져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기도 했다. 강의록을 쓰고 PPT를 만드는 시간 내내 마음이 풍족했다. 뭔가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때의 두근거림과 비슷했던 것도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방법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는 것. 원했던 기회였고, 도전해보고 싶었던 방법이었다.

뭐, 그래서... 드디어 오늘 강의를 했다.

길지 않은 시간 25분이었지만,  낯선 대중들 앞에서 처음엔 고개도 못들고 목소리도 달달달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 강의도 끝나고 질의응답도 끝나고 사람들과 마주했을때, 가만히 다가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이 사실은 미치도록 감사했다.
이 사람들의 이해도와 관심도와 그런거 다 필요없이, 진심이든 빈말이든 다 필요없이 강의 잘 들었다는 인사가 어찌나 감사하던지.

강의에 대한 자신감의 문제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해왔던 지난 몇년간의 활동이 의미있는 것이었다는 스스로의 안심이 크다. 내가 해왔던 활동이, 그냥 시간지내옴이 아니었다는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던지, 오늘의 이 경험이 나에겐 용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이젠 좀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트랜스젠더 활동가이다.


2012/11/18 21:06 2012/11/1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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