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만에 한해를 돌아보고 2013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1. 2012년은 버라이어티한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꺼다. 2월에 살림이 끝나고, 3월부터 새 직장에 출근, 그리고 8월말을 끝으로 또 일이 끝나고 쭈욱- 논문.

2. 6개월간 다녔던 새 직장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분노하게 하기도 했지만, "일반 사회" 진입시 겪게 되는 어려움, 사람들과 내가 섞여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능성 확인 등을 남겨줬다. ㅅㄹ에서 일할때는 그래도 친구들이 늘 곁에 있었고, 빠르지 않게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그런데 6개월직장은 완벽한 일반 사회. 내 눈치를 보면서도 성적인 농담은 간간히 나오는 50대이상의 남자들이 가득했던 곳.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나를 놓지 못하게 했던 일에 대한 즐거움 등등.. 뭐라고 해야할까... 정말 생각이 많아진 곳이기도 했다.

3. 논문을 정말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2월 졸업이 실패했다. 2월까지 논문을 마무리짖겠다고 지도교수님과 합의하긴했지만, 그래도 그 절망감과 좌절은 생각보다 컸다. 내가 정말 논문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다. 하지만, 다시 결심을 했다. 잘 해봐야지...

4. 트랜스젠더활동가로서의 정체화를 공고히했다. 전에 블로깅도 했으니 다른 말은 필요없을 듯.

5. 이 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갔다.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함께 했고, 힘든 시간을 제공했었고, 내 인생에 지워내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인생이 지나는 동안 중요한 사람의 한명이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오랜 시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고마웠다. 어느 시간동안은 그를 사랑했었고, 어느 시간동안은 그를 저주했었고, 그리워했고, 그 나머지 시간은 정리했다. 활동가의 입장에서 그를 존경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가 내 인생의 어느부분을 함께 한 사람임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며, 잊지 않을 것이나, 과도히 추억하거나 기억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6. 대선이 치뤄졌다. 대선 결과에 대한 저주와 절망과 우울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튼, 이걸 계기로 많은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2013년의 방향을 더욱 확실하게 결정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진 않다 흥.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2013년엔 더 열심히 살겠다.
2012/12/30 03:52 2012/12/30 03:52

2010년 중반에 써서 http://tqueer.com 이라는 웹진에 넘겼던 글. 당사자 운동에 관한 고민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ㅎ 지금도 이런 고민은 간간히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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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년, 소위 말하는 퀴어 활동판에 나는 덩그러니 내던져졌다. 그곳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가 있었고(스스로를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못만났다) 그 LGT 안에서도 정치적 포지션과 사회적 포지션에 따라 수많은 퀴어들이 나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첫 느낌은 신기함이었다. 우와앗! 세상에 이렇게 많은 퀴어들이 ‘활동’을 하고 세상에 이야기를 걸고 싸워나가고 있구나! 이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이 처음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퀴어’에 대한 범위는 넓어져 가고, 그에 따라서 수많은 생각의 시행착오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퀴어 활동가들은 과연 소수자 감수성이 뛰어난 것일까?라는 것이 고민의 시작이 되었다.

사 실 나에게 퀴어판에서의 퀴어는 대부분 ‘동성애자’를 일컫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성전환자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의 우리는 성전환자였지만……. 항상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을 할 때의 고민은 “왜 나는 성전환자가 아닌가?” 였다. 상담전화와 인터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죄송하지만, 전화 받으시는 분은 당사자이신가요?”, “당사자를 만나보고 싶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활동을 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경험하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할까라는 어이없는 생각도 했다. 나는 이 단체와 성전환자 이슈를 고민하며 열심히 활동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당사자와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중간고리 입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 지만 이런 고민들과는 또 별개로, 나 스스로에게도 ‘성소수자로서의 당사자성’은 꽤나 큰 것이었다. 어떤 연대 활동을 할 때였다. 당시에 참여하던 단체들 중에는 성소수자 단체가 아닌 곳들도 꽤 있었는데, 나는 그중 어떤 남자 활동가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은데,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당사자 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그 사람이 비성전환-이성애-남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그 분이 저 정체성에 들어맞는 분일 수도 있지만, 그런 질문을 한 나 스스로에게 든 생각은 좌절 그 자체였다. 당사자 단체에서 당사자만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나도 결국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니까. 또한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비성전환-헤테로 남성이나 여성이 퀴어 관련 단체나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면, 좀 더 높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게 되고, ‘당사자도 아닌 네가’ 여기서 ‘왜’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끊임없이 확인을 하고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지나고 나면 그러한 ‘이성애자’나 ‘퀘스처닝’인 사람들의 활동이나 정체성을 이 판 안에 아웃팅 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시달리곤 했다. 당사자만이 활동을 하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강박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활동을 할 때는, ‘당사자가 아님’을 알리고 그럼에도 당사자에 상응하는 정당성을 인증받거나, 혹은 그만큼의 열정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는 또다른 강박을 가져온다.

퀴 어운동판에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있으면서 계속해서 들었던 자괴감은 내가 어디에서도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트랜스젠더 운동을 할 때는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었고, 다른 퀴어 안에서도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소수자라는 이름 안에서 당사자인 나는 ‘우리 퀴어’ 안에서는 비당사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듯 했다. 내가 당사자인 혹은 저 안에서 호명되지 않은 다른 퀴어들의 자리는 없었다. 트랜스젠더들의 성적지향은 당연히 무시되었다. 비트랜스젠더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트랜스젠더 이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은 소수자조차 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퀴어 단체들의 회의 자리에서도 이런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소수자나 퀴어라는 말을 사용해서 회의를 시작해도, 결국 이야기는 ‘동성애자들’이라는 단어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동성애자가 모든 LGBTQ를 포함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동성애자”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드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동성애자가 아니라, 성소수자라고 말해주세요. 양성애자도 있고, 트랜스젠더 중에는 이성애자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이렇게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 퀴어 운동이 아니라 동성애자 운동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어 운동을 뭐라고 정의 할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퀴어 운동이 동성애자 운동은 아니다.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물론 한국 퀴어 운동의 시작은 동성애자 운동으로 시작했다 생각하지만, 지금은 동성애자의 문제 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정체성, 성적지향의 문제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런 문제의식이 드는 것 자체가 동성애 당사자성이라는 것이 성소수자 내에 얼마나 큰가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 지만 퀴어운동을 하면서 드는 가장 큰 고민은 동성애자로서의 당사자가 아닌 내 위치에서 ‘당사자 운동’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나 역시 어느 정도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당사자 운동에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레즈비언이 대다수인 자리에서 나 또한 “우리 레즈비언”이란단어를 즐기면서 내가 레즈비언인 양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뭐, 레즈비언하고 바이섹슈얼이 딱히 100% 다른 존재이기만 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내가 바이섹슈얼로서 퀴어라는 지위를 점유할 수 없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동성애자의 위치를 양성애자의 위치와 함께 가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것은 비성전환-바이섹슈얼로서의 피해의식과 스트레스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퀴어활동판에서 활동을 하는 다른 비성전환/비동성애(양성애자 혹은 이성애자 퀴어) 활동가들이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들의 자긍심 또한 클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렇다면 퀴어 운동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 해야 하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LGBTQQAI(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Questioning, Asexual, Intersex의 두문자어)라는 단어로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퀴어라는 상위분류아래에서 트랜스젠더의 다양한 성적지향과, 이성애자이지만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하는 이들의 정체성은 포함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포함이 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퀴어 감수성을 가지고, 다양한 퀴어의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 되는 것인가? 세상의 비성전환자 혹은 포비아적이거나 관심이 없는 이성애자를 제외한다면 다들 퀴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 퀴어운동인가? 퀴어적 감수성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과연 퀴어감수성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 쩌면 이러한 혼돈 속에 있는 것이 퀴어운동은 아닐까. 10년이 훌쩍 넘은 퀴어 운동이지만, 운동의 방향과 운동을 하는 사람은 계속 바뀌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또 다양한 고민을 한다. 변화를 고민하는 것,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고 바꾸려 노력하는 것. 말 같지도 않은 당연한 말이 퀴어운동을 이야기 하는 단순한 문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짜증과 불만을 토해내는 나의 말이 또 그 안에서 새로운 퀴어 운동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12/11/29 21:28 2012/11/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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