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지의 인권이야기] 남성/여성, 이분법에 갇힌 세상
                                                                                                               
                                                                                                                  한무지
한 2년여 전 쯤이었을까요. 트랜스젠더인 후배와 함께 술을 한 잔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화장실엘 다녀온다고 해놓고는 감감 무소식인겁니다. 화장실에 빠졌나, 싸움이라도 붙은 걸까 이래저래 걱정이 되어 밖으로 나가보니 화장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일으켜 세우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 친구 대답이 이랬습니다.
“형, 나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그를 보며 말문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그는 어떠한 치료도 시작하지 않아 외관상 남성, 여성 그 어느 쪽도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선뜻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그렇다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도 없었을 터입니다. 어느 쪽에도 들어갈 수 없는 그 자신이 불완전하다 느껴졌을 테고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이 그를 짓눌러 주저앉아 울게 만들었겠지요.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괜찮아, 네가 잘못된 게 아니고 저 화장실이 잘못된 거야”하는 말을 읊조리며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두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남성과 여성, 그 이분법

사진설명여성과 남성, 그리고 성전환자의 존재를 알리는 로고<출처; http://a.webring.com>
세상은 남성과 여성, 이 둘을 철저히 구분 짓습니다. 주민등록번호, 화장실, 목욕탕, 병실 등 수없이 많은 제도와 공간들이 자신의 성별을 밝히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확실해 보이면 끊임없는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여자냐, 남자냐”하는 소리부터 “당신, 이거 당신 신분증 확실해? 이거 서에 가서 확인해야겠는데”, “어머! 남자가 왜 여자화장실에 들어와!” “뭐야, 왜 여자(혹은 남자)가 남성(혹은 여성) 병실에 들어오는 거야?”까지 각종 언어폭력, 심지어 물리적 폭력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별 가르기’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사회에서 성전환자들은 그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상처받는 일이 더 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호르몬치료 전의 성전환자이든, 호르몬치료에 의해 어느 정도 원하는 성의 외관을 가지고 있는 성전환자이든,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말 그대로 ‘어정쩡하게’ 드러나 보이거나 외관상의 성별과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일치하지 않거나 하는 것 모두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니 어떤 식으로든 배제되기 마련이고, 가끔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상황들도 일어나곤 합니다.

“내가 외계인인거지 뭐.”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던 한 성전환자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야, 사고가 나는데 아찔하더라고. 가게에서 남자로 일하고 있잖냐. 근데 기절해서 실려가봐. 이거 완전 일 나는 거야. 뭐 어쩌겠어, 정신력으로 버텼지. 병원수속 밟고 바로 기절했다니까. 근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 딱 깨니까 여자 병실인거야. 옆에선 수군대고 있고, 이거 눈을 떠야할 지 말아야할 지……. 입원해 있는 내내 옆 침대 아줌마랑 싸웠다니까. 남자가 왜 여자병실에 입원하냐고 시비를 걸어대는 통에, 결국 신분증 까면서 여자 맞거든요! 하고 소리쳤지 뭐. 야, 그 순간 진짜 말로 다 표현 못하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말하는 그의 얼굴에선 그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 긴장과 “여자 맞거든요!”하며 소리쳐야 했던 그 모멸감을 열심히 설명하던 그는 결국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외계인인거지, 뭐.”

여성입니까, 아니면 남성입니까?

사진설명영화 <헤드윅>의 주인공. 성전환자인 그녀의 영화 속 삶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그/녀들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가 자신을 ‘외계인’이라 정의하기까진 수없는 상처와 고민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취직을 하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당신같은 사람들은 모조리 정신병원에 넣어야 돼!”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고, 불심검문 때에는 신분증으로 신분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서까지 가서 지문을 확인받은 적도 있을 것입니다. 호르몬주사를 맞기 전에는 밖에서 화장실은 아예 가지도 않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인생을 통틀어 수영장 한 번 가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성은 오로지 남성과 여성 두 개 뿐이다’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사람일 것이고 그것으론 도무지 자신이 설명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분명 이상하다 느꼈을 것이고, 사람들 또한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인 듯 대했을 것입니다.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나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나의 타고난 신체가 끔찍이도 싫었고, 성적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에도 남자라 말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누가 ‘언니’라 부르면 잠을 못잘 정도로 성별 위화감이 심했고, 끊임없이 남성성을 과시하려했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성의 신체를 타고 태어났고, 여성으로서 대해지던 시간들(자각하던 자각하지 못하던)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를 ‘온전하지 못한 남성’, ‘잘못 태어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쳐, ‘트랜스된 남성(TransMan)’이라 정의하였습니다. 구태여 여성으로서의 시간들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저 자신을 부정하는, 옳지 못한 일이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끈임 없이 한 쪽 성에 온전히 편입하기를 강요합니다. 대법원의 성전환자 관련 사무처리 지침에는 버젓이 ‘외부성기를 비롯한 신체적 외관을 갖췄을 것’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가슴도 없고, 페니스도 없는 저는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사고로 페니스를 잃은 남성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여성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덧붙이는글
한무지 님은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2 호 [입력] 2006년 12월 06일 2:05:05
2007/03/12 23:02 2007/03/12 23:02

[인권, 영화를 만나다] 소녀 오동구, 뒤집기에 성공할까?

성전환자인권운동, '천하장사마돈나'를 만나다


                                                                                                                       한무지

인터넷 검색창에 ‘천하장사마돈나’를 치면 주인공 동구에 대한 지칭이 참으로 다양하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자신이 여자라고 믿고 있는 소년’ ‘성정체성이 흔들리는 소년’……. 그렇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녀를 ‘소녀’라 지칭 하지 않는다. 그녀는 ‘소년’인가? 아니면 ‘소녀’인가?

부재해 있는 혼란과 고통의 극복

영화는 어린 동구가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을 들으며 립스틱을 입술 가득 바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그렇게 암시될 뿐 영화 전반에는 그 혼란에 대한 당황과 고민, 고통이 배제되어있다.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학교를 지각하면서 까지 매일 아침 ‘막일’을 나가고, 태연히 “나는 분명히 아주 못생긴 여자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동구에게 ‘성전환수술’이라는 것은 돈만 모으면 할 수 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자신의 정신적 성과 신체적 성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과 그에 대한 고통도, 사춘기와 동시에 더 심해졌을 신체에 대한 혐오도 영화는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못생긴 여자가 될 거라고 태연하게 말하기까지, 치열하게 겪어야만 했을 고민과 아픔을 배제함으로써 자칫 철없는 한 소년이 한순간의 판단으로 인생을 결정한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사망의 위험까지 부담해야하는 ‘성전환수술’이 500만 원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 진다.

자신을 사랑하는 소녀 ‘오동구’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겪었을 아픔에 대한 해소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자기애’이다. 당사자에게서는 찾기 힘든 그녀의 그 자기애는 정말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아름답다. 고통들에서 오는 끊임없는 우울과 자기혐오, 그에 의해 대부분의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자살시도와 자해의 경험들…….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동구는 자꾸 안으로, 더 안으로만 파고들게 되는 당사자들에게 “그건 니가 잘못된 게 아니야. 그들이 잘못된 거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듯 당당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동구의 당당함과 긍정성은 비현실적이다. 신분증을 내미는 모든 상황에서 배제될 뿐만 아니라 혐오범죄와 각종 노출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세상의 현실은 바로, 부둥켜 앉고 인정해주겠다던 그녀의 엄마도, 장래희망이 있어 좋겠다던 그녀의 친구도, 노래를 부르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던 씨름부 동료들도 아닌, 그녀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며 “가드를 올리라”던 그녀의 아버지이다.

차이와 차별의 간극

장래 희망이 있어 좋겠다는 친구에게 동구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라고 소리친다. 백 번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동구를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결국은 ‘장래 희망’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지만, 그녀는 정말 그저 살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정신적 성과 신체적 성이 다르게 태어났을 뿐이고 그래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기 위한 한 수단으로써 ‘성전환수술’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것은 ‘차이’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차이는 차별을 낳지 않는다. 차이가 틀린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차별을 불러올 뿐이다. 그러나 차이에 대한 잘못된 인정 또한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그것이 바로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가 되고 싶은’이라는 표현이다. 대부분의 성전환자(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수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써 인생의 첫 번째 ‘목표’인 것이다.

열심히 하면 뒤집기도 할 수 있나요?

동구는 자신의 방 마돈나의 사진 옆에 씨름교본에서 오려낸 ‘뒤집기’라는 기술이 소개된 페이지를 붙여놓는다. 뒤집기를 성공하면 세상의 편견도 뒤집히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닥친 첫 번째 현실인 아버지를 상대로 뒤집기를 성공하여 멋지게 첫 승리를 일궈낸다. 그러나 그 뒤집기 기술을 성공하기 전까지 동구는 무수히도 얻어맞아야 했다. 도대체 동구는 앞으로 세상과의 투쟁에서 얼마나 더 얻어맞아야 하는 것일까. 그녀가 겪어야 할 수술의 고통과, 가족들과의 끊임없는 마찰과 소외, 세상의 편견과 차별, 기나긴 인생에서의 장기전을 동구는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녀의 긍정성과 자기애에 끊임없이 가해질 세상의 야속한 갈고리들이 못내 가슴 아프다. 별 다름이 없음을,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구성원일 뿐임을, 그래서 이들도 인정받는 사회에서 일을 하고, 교육을 받고, 문화생활을 하고, 가족을 꾸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언제쯤이면 이 사회는 받아들일 것인가?

나 역시 묻고 싶다. 열심히 하면, 세상이 뒤집히기는 하나요?
덧붙이는글
한무지 님은 (준)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대표입니다.
인권오름 제 23 호 [입력] 2006년 09월 26일 14:27:38
2007/03/12 22:58 2007/03/12 2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