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성영화제에서 시작점을 찍게 된 영화는 마이크 삼촌.

작년과는 달리 트랜스젠더 관련 영화가 몇편 상영을 하지 않아서, 특별히 더 신경을 쓰게 되었던 영화였다.

고작 4분의 뮤직비디오인 이 영화에, 사실 나는 눈물이 찔끔 났었다.

마이크 삼촌이든, 미쉘고모든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그 말이, 나에게는 너무나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건 어쩌면 내가 요즘 너무 감성적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즐거운 점은, 마이크 삼촌의 변화하는 모습. 사람들이 초반에 순간 당황했던 모습이 마이크 삼촌의 수염. 남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마이크 삼촌이 2절쯤에는 여성의 신체로 변화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모습에도 변함없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조카.

이 영화 후 GV에서 프로듀서는 이 노래등을 만들게 된 배경과 사람들의 반응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차를 타고 가던 레즈비언 부모를 가진 아이가 정말 아무 말도 없이 노래를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엄마! 이건 우리 가족에 대한 노래예요! 다시 틀어주세요!"라고 하며 몇번을 다시 들었다는 이야길 들으면서 부럽기 그지 없었다. 프로그래머 손희정씨의 말 처럼,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노래보다 성소수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 되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나의 노래를 그리고 우리의 노래를. 모두가 공감하고, 가슴이 따뜻해질 수 있는 성소수자의 노래가 새삼 불러보고 싶어진다.
2009/04/10 17:48 2009/04/10 17:48

회의가 밀려온다.

고질적으로 고민해왔던 부분이다.

그 지긋지긋한 당사자 주의. 당사자 운동.

당사자가 아니면 입닥쳐라, 네가 뭘 아느냐.

난, 뭘 알고 있는걸까.

뭘 안다고 이렇게 나부렁대며 살고 있는걸까.

주위의 다른 사람보다 많은 수의 트랜스젠더를 알아서?

트랜스젠더와 연애를 한 적이 있어서?

트랜스젠더 운동을 하고 있어서?

내 가족같은 사람중에 트랜스젠더가 있어서?

나의 당위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다시 당사자도 아니면서 나불대지 말고 입닥치라 말을 한다면....

이제까지 내가 싸워왔던 것은, 소리쳐 왔던것은, 주장했던것은.........

다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던것인가.

정말이지......... 회의가 밀려온다.

2008/12/16 02:55 2008/12/16 02:55

요즘은 글을 볼때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때 트랜스젠더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된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는 '젠더 이분법을 위반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미가 더 크게 읽히는 듯 하다. 물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의미에서 모든 게이와 레즈비언은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미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섹슈얼을 나눠서 생각하고 있나?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미 운동판과 학술판에서 트랜스젠더는 다행히(?) 트랜스젠더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고, 그에 따라(?) 트랜스젠더 운동은 젠더 이분법에 대한, 혹은 다양한 젠더에 대한 운동으로 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이게 언어 혼용의 문제인지, 아니면 이사람들은 젠더위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트랜스젠더든 트랜스섹슈얼이든 성전환자든 뭐든, 현실은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현실안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 관해서만은 현실을 보지 않는 것만 같다.

나에게 트랜스젠더는 전혀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어간다. '젠더를 위반하는 자', '새로운 대안'의 트랜스젠더라니.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는 비가시화되는 느낌이랄까.

장채원씨가 자살을 하면서, 약간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관심이 반짝하더라. 그런데, 뭐... 결국은 다 흥밋거리-.

여전히 "트랜스젠더라는 존재가 있어요~"라고 떠들어야 하고, 새로운 젠더에 대해 앞장서서 말해야 하는게 트랜스젠더 운동인걸까.

뭔가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트랜스젠더운동을 막 바라보기 시작하는 비-성전환자인 사람들이 '바라는' 트랜스젠더 운동은 '젠더 이분법 타파, 다양한 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인것만 같아서 답답하다.

어떤걸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것만 생각하게 되는건지, 아니면 그게 제일 중요한거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의 가치인것인지 모르겠다.

현실에 대한 문제는 트랜스섹슈얼만의 문제가 아닌거고, 우리나라에서 소위 통용되는 '트랜스젠더'(섹슈얼을 포함한)의 문제이다. 그래, 물론 저런 문제들도 현실에 대한 문제이긴 하지. 사람들의 갇혀진 시각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하지만!

언제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두리뭉실함만을 이야기 할것인지, 난,.... 답답하고 서럽고 머리가 아프기만 하다.
2008/10/08 10:37 2008/10/08 10:37

두 영화 모두 트랜스젠더 관련한 영화.

그가 사는 법
"내 몸이 알루미늄이어서 머리 아래로는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바람처럼 달리고 싶어요"라는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몸에 대한 부대낌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줬던 부분.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감옥에 수감된/적이 있는 MTF 트랜스젠더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어찌 생각하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다른 "상식"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우선시되면서 무시되버리고 폭력이 된다. 사람들의 "외부성기"에 대한 생각의 전형을 보여주는것도 같다.
어디까지를, 어떤것을 우선시해야 하는 걸까.

요즘 계속해서 트랜스젠더관련 다큐를 보면서

2008/04/15 02:01 2008/04/15 02:01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 참여하는 인권활동가대회. 작년에는 다른 소속으로 갔었고, 올해는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의 소속으로, 그리고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게 된 활가대회라서 조금은 새로운 기분이 아니었나...

*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참여를 하는것은 이전과는 좀 다른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마냥 사람들을 만나고 즐기기 보다는, 무언가 하나라도 더 챙기고 뛰어다녀야 할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고, 계속 일한 사람만 일하게 한 것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많이...

* 작년에 지렁이 활동가들이 고민했던 화장실에서의 성별이분화라는 고민을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한 주제토론방으로 가져갔다. 물론 발제는 캔디(혼자 갔으니까;;).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버벅대면서 제대로된 진행은 하지 못했다. 언제쯤이 되면 제대로된 진행을 할 수 있을까. 일단은 사람들에게 성별이 들어가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에는 성공한 듯 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구나! 라는 것 이외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것만 같다. 결국은 내가 원했던 것보다는 낮은 수위의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화장실로만 이야기가 한정지어진것만 같아 아쉽다. 그래도! 함께 이야기 나누던 분들의 진지하고 생각에 가득한 눈빛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1년동안 실천해보고 다음 활가대회때 변화 상황을 나눠봐요'라던가 '따로 만나서 이야기 계속해보는것도 좋을것 같아요'같은 말은 나를 즐겁게 했다.

* 아팠다. 그 전전날 밤을 세고, 출발 전날도 거의 잠을 못자다시피 하고 나갔던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어서 였을까. 결국은 온몸의 근육통과 열에 시달려서 첫날 행사는 아무것도 참여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깬 시간을 포함하여 15시간정도를 자버린...활가대회 최장 수면자로 등극하게 되었고, 둘쨋날 아침식사 이후부터는 다시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둘쨋날 저녁엔 역시나 거의 밤을 새고 2시간도 자지 않은채 이밤을 찢고 놀았다)


* 활가대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 내가 모르는 어쩌면 알고자 하지 않는 많은 일들을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열정적으로 해나가고 있는 이들. 전혀 맞을 것 같지 않으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마냥 즐겁고 신이난다. 그들의 그런 열정이 나에게 조금씩 옮겨오는 것만 같다. 이번 활가대회때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건 역시 '비당사자'의 활동 참여. 장애인운동을 하는 비장애인활동가, 여성/환경운동을 하는 남성활동가 그리고 성전환자운동을 하는 캔디. 당사자가 아님으로 인해서 해야만 했던 고민들, 캐치하지 못했던 지점들 그럼에도 해나가는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힘이되고, 많은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응....그렇지...

* 참! KANOS의 K활동가에게 사주봤다. 金이 4개나 있고,木이 3개나 있는, 土가 하나있고, 火랑 水는 무려 하나도 없는 캔디의 사주는 쪼꼼 머리가 아팠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말도 있었던가... 머리만 아프다.

2008/02/23 14:39 2008/02/23 14:39

지렁이가 단체명을 바꾸게 되었다.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에서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기존의 회원단체가 아닌, 활동가 중심의 단체로 가겠다는 발표이며, 좀더 다양하고 확장된 활동을 하겠다는 우리의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도 서툴게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지렁이이다. 꿈틀거리면서, 빠르진 않지만 꾸물꾸물 끊임없이 기어가고 있는 우리는 지렁이이다.

지렁이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매김하면서 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져왔다.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시 한번 논의하고, 다시한번 되새기며 성소수자에 관하여 그리고 트랜스젠더에 관하여 고민하게 된다.활동가가 히어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활동가는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거 같아서, 전만큼 쉽사리 뭔가를 지르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안그러고 산다는건 아니다)

활동을 해나가는 것에,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우리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을 보고, 질문하는 사람을 맞이하는것에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단체뿐만 아니라, 활동의 상 뿐만 아니라, 지렁이 사람들에게도 점점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캔디이지만, 또한 지렁이의 캔디이기도 하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당사자가 아님에 고민하고, 생각이 부족함에 고민하지만, 그마만큼이나 지렁이에 대한, 이 활동에 대한 나의 애정이 있음에 전보다 조금은 더 안심을 하게 된다.

트랜스젠더, 인권, 인권활동, 활동단체, 트랜스젠더인권활동...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이름들 속에 내가 가야할 길 또한 숨어있을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그렇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한다.

지쳐쓰러지는 일 따위는 이제 없고싶다.

2008/02/10 02:20 2008/02/10 02:20

입양을 처음 생각했던건 중학교때였다. 그때 나의 소망은 '카사노바처럼 화려하게 살다가 나중에 혼자 애를 낳거나 입양해서 잘 키워보자!'였다. 왜그랬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여하튼 그랬던것 같다.

그리고 다시 입양을 생각했던 것은 I와 헤어진 후였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나중 언젠가는 입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처절한 나의 이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라는 존재를 삶의 담보로 여기고 싶었던 그날의 내 모습이었으니까.

최근, 나는 다시 입양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H씨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행복한 가정' '토끼같은 자식들' '삶의 낙'같은 그런 명랑한 단어들을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하리수씨가 결혼을 하면서 입양을 하겠다 말을 했고, 이 '사건'은 커다란 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한 연예인 부부가 결혼해서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것이 어디 하루이틀 일도 아니련만 이것이 사건이 된 것은 단지 그녀가 '트랜스젠더'라 불리우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티비에서는 끊임없이 '현행법상' 그들의 입양은 문제가 없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또한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특별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이고 그런 그녀의 정체성은 그녀가 아이를 키우는데 커다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혹은 자라서 알게될 부모의 '비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르고, 그로인해 '왕따'를 당할지도 모르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면서 남들보다 '넓은 마음'과 '더 긍정적인 마음'과 '현명함'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왕따를 당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의 중심에 있을 수도 있고, 멋진 이성애자로 혹은 멋진 동성애자로 자랄지도 모른다.

이것은 모두 가정일 뿐이다.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고민을 했고, '양성애자'의 정체성을 가졌으며, '성전환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의 수많은 범죄자들과 삶의 혼란을 겪는 무수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래. 어떻게 자라느냐 하는것이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환경에서 어떤 '내가' 되어가느냐 하는 것은,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다. 알콜중독자인 부모밑에서 자랐어도, 움막같은 집에서 살았어도 멋지게 자라난 사람이 있는 반면, 이상적인 부모 밑에서 사랑만 받고 자랐어도 범죄자가 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성전환자의 입양은 그저 그들의 '다름에 대한 두려움' 그 이상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서 겪지 못했던 현실'이기 때문에 결과를 본 적이 없고, 그럼으로 그 결과를 당연히 부정적일것이라 생각하는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이다.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성전환자'는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 것이라 하는가.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그 가정에 '입양'된 아이는 '입양과 성전환부모'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단언하는가.

당신은 그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당당하다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라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부모가 되는 권리조차 막혀야 한다면, 나는 내 몸으로도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할것이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2007/06/18 22:24 2007/06/18 22:24

드디어 한무지 안티가 생겼다.

한무지씨 안티 까페가  생기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급한 연락을 받고 들어가 본 까페는 난리도 아니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대한 비판이나, '한무지'의 말하는 방식에 대한 비난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어이없다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의 내용은 그저 저사람이 '한무지'인게 싫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을 것이다.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저 싫은 사람 생겨서 이런 방식으로 '밟아보고 싶어요'라는 느낌이랄까.

서둘러 내용들을 캡쳐를 한 몇시간 후, 까페는 누군가의 신고로 폐쇄되었다. (사실 그 후에도 까페는 다시 한번 생겼었다 한다) 이런 내용들은 곧 성전환자 인권연대 지렁이의 블로그에 개시되었고, 한무지씨는 민사소송까지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자세한 내용은 지렁이 블로그의 한무지씨를 증오하시나요? 참조

무서웠다. 사람에 대한 이런 아무 이유없는 미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장난어린 미움으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깍아내리고 밟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도 아무 죄.책.감. 없이..

그들이 어리다는 것, 어려서 아직 인권에 대한 혹은 사람을 이야기 하는 방법에 대한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으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이'는 면죄부의 구실을 해줄 수 없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그정도는 알만한 나이라 생각이 된다.

만약 저런 안티까페를 성인이 만들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그들은 더 지능적으로 움직였을 것이고, 정말 한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한무지씨의 안티까페까지를 만들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느날 그저 베달여를 봤는데, 생전첨보는 무려 자신을 남자라고 하는 트랜스젠더가 나왔다. 트랜스젠더는 하리수만해도 웃긴데 쟤는 무려 남자시랜다. 그래서 맘에 안든다. 심심한데 얘나 한번 까대볼까? 였던 것일까?

그들의 '그저 싫음'과 '장난으로'의 맥락을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 알고 싶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다가 그런거니?

그러니까 사실 내가 알고 싶은건, 이들의 이런 것들을 통해, 사람들의 그저 싫음에 안티까지 행하는 그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방향이 궁금하다. 그들의 생각이 갈 거리와, 나의 생각이 바라볼 거리. 그 차이들. 그리고 혹은 같은 지점들. 어떻게 이 사건이 진행되어 나갈지..흥미롭다.

(아- 중구난방이다. 계속 정리를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아.. 관련된 다른 글. 루인의 베달여-한무지-무지증오, 1


 

2007/05/17 02:44 2007/05/17 02:44


2007년 3월 중순 세간은 하리수의 결혼이야기로 시끌벅적이었다. 하리수와 Mnet은 그 언론을 조장하고 그녀의 결혼을 상품화 하기 위해 일명 하리수의 배달여(베이비 달링 여보)를 제작하게 된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이고, 공인이며 공인인 트랜스젠더로 "무려 결혼까지 하시는" 분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많은 호기심에 그녀에게 새로운 스포트라이트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H씨가 배달여에 깜작 게스트로 섭외가 되었다. 케이블 방송이라 방송 자체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음에도, 문제는 이미 인터넷 기사들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었다.

뉴스의 제목들은 천편일률적으로 "하리수 결혼보도 악성댓글에 눈물'이었는데 그 밑의 자세한 내용에는 다른 출연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FTM 트랜스젠더 ***의 충격적인 연애담"이 나올 것이라는 내용들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사실'이 되었다.

당시 H씨가 방송에 나간다고 하였을때, 사실 상당히 걱정을 했었다. H씨가 이제까지 나간 방송은 대부분 현실에 관련한 뉴스 인터뷰가 대부분이었고, 그 외에도 다큐멘터리라고 할만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전부이기 떄문이다. 연애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그것도 게스트로 나간다는 것은 아웃팅등을 고려할 때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시 '하리수'를 만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게 우리와의 연대를 요청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일들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결국 연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지만..), 나는 불안한 결과를 예감하면서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방송이 '하리수'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성전환자들도 보통사람과 다름없이 사람을 하고 결혼을 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과없이 나오던 수많은 "잡담"들은 과연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도리어 H씨의 자극적인 발언들 - 양다리가 뭐예요 4다리도 걸쳐봤어요 등등 -을 통하여 도리어 성전환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여지 또한 극명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난 사실 아직도 그들이 "왜" H씨를 섭외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곳은 일반 활동가가 나갈 자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곳에서 H씨는 그들과 동조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들을 해주기 시작했고, 그것은 가쉽거리가 되어 이곳저곳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H씨가 원하던 결과는 어니었겠지만, 일단 사실은 그러하다. 보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방송이 나와 당황하기도 하였으며, 낯선 게시판에 음해성 글들이 올라와 삭제를 요청한 적도 있다.

이제와서 H씨의 방송 출연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사람은 이미 그의 결정에 대한 댓가들을 치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방송이다. 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방송, 그 어마어마한 편집의 세계에 치를 떠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부분만 교묘히 편집해 정작 당사자들의 발언의 의미와 전혀 다른 내용을 바뀌어 나오는 방송을 볼때마다 짜증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른다. 그들은 방송이란 매채가 가지는 영향력을 아직도 간과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시청률을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만들어낸 그 영상들은 그대로 시청자들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가 생각으로 자리잡게 하곤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 방송의 당사자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출연해던 방송에 의해 원하지 않았던 설정으로 포장되어져 의외의 결과를 맞게 되기도 한다.

하리수의 베달여는 일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송이다. 트랜스젠더인 그녀의 평범한 결혼을 위해 나가가는 길에 그녀는 '일반여성들' 보다  '더욱 여성적인' 모습의 그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그녀의 생존전략이며 인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회성적인 방송들을 위해 그녀는 어쩌면 다른 트랜스젠더들의 다양한 모습을 감춰버리고 있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녀의 생존과 전략은 다른 트랜스젠더들의 원치않는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잘못은 '살아남고 싶어하는 하리수'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을 만들어내기위해 동조하고 요구하는 방송사'에 있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러한 방송에 더 관심을 보이는 시청자'에게 있는 것일까.
 
2007/04/22 20:45 2007/04/22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