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좋은 기회로 쓰게 된 글이 드디어 나왔다. 사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전에 했던 일들에 대해 말해본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게 좀 부담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냥 뭐 어떠리.. 싶은 맘과 그래도 말해볼까? 싶은 맘.. 그리고 나도 뭔가 정리해보고 싶어! 라는 맘으로 쓰게 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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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닌 "모두 함께" 말하는 운동


캔디.D | (가)살림의료생협 활동가,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 당번

2011년 10월. 무슨 ‘활동가’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6년차. 한 곳에 진득하니 있지는 못했지만 점점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찾아가는 듯하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상근자로 시작하게 된 성소수자 운동은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된 환경이 얼마나 척박한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꾸려지면서 우리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점점 더 명확해져갔다. 지금 현실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해줄 수 있는 ‘법안’이었고, 법안을 만들기 위해 공동연대는 실태조사를 하고,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법안을 발의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다.

일련의 상황들을 겪어나가면서 트랜스젠더 인권 이슈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는 와중에 ‘트랜스젠더 인권활동단체 지렁이’(아래 ‘지렁이’)를 만났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지렁이는 활동가 위주의 단체였다. 활동가들이 모여 최근에 불거지는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생각하고 진행해나가는 여타의 인권단체와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신생단체였으니만큼 인원이 현저하게 적었다는 점? 혹은 활동가 대부분이 당사자였다는 점 정도?

지렁이 활동은 즐거웠고 행복했다. 트랜스젠더 단체가 딱히 없었던 만큼 함께 해야 할 것들도, 내/외부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사무실도, 상근자도 없는 상황에서도 지렁이는 정말 열심히 많은 사업들을 수행해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나 개인의 고민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 운동을 하는가?’에서 시작된 고민은 ‘왜 우리는 활동가 단체인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운동을 하고 있는가?’라는 것으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인권운동이 차별 당사자 모두의 입맛에 맞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슈 파이팅이나 법안 운동을 하다보면 이론적인 논의 또한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발전들이 과히 달갑지 않았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운동은 젠더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많이 확장시켜나가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이 되면서 법안이나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겨나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젠더와 수술, 법, 한국사회의 인식정도가 모두 다른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는 나에게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수술을 해야 성별 정정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지만 어떤 사람은 수술이 꼭 중요한 것인지, 성기가 없으면 남자가 아닌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두 가지 다 중요하고 사람의 상황에 따라 주장할 수 있는 바가 매우 다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운동은 특히나 당사자가 많이 나서지 못하는(또는 나서지 않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보다는 ‘다양한 젠더’에 대한 논의가 더 빨리 퍼져나갔다. 다양한 젠더에 관한 논의는 꼭 필요한 이야기였고 언젠가는 나왔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게 법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함께 나오기 시작한 것도 적당한 시점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 맘은 그리 편하지 못했다. 나에게 중심은 ‘당장 성별정정을 못해서 힘든 당사자’들이었지만, 내가 느끼기에 현재 인권운동에서의 중심은 점점 더 담론화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이것은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이들이 이론가-활동가이기도 했고, 당사자들의 경우도 당장의 좁은 현실보다는 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당사자가 아닌 나는 어떠한 목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전체 사안을 바라보고 모두의 의견을 합의시켜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책임의식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당사자들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당사자들의 모임을 만들거나 거기 나가기도 해봤지만 그들이 활동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하고자 했던 일이 아니라는 고민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의 내용을 다루지만 당사자가 부재하는 상황, 그리고 내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하고 있는 인권운동은 나에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의 한계,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고민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3년차인 신생 단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한 번에 할 수 있고, 또 그런 아이디어와 여유를 가져올 수 있겠냐 싶지만 그때는 그 한계들로 인해 죽을 만큼 자존심이 상하고, 또 싫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한동안은 트랜스젠더의 T만 봐도 진저리가 쳐질 정도였다. 인권운동, 성소수자 운동 다 좋지만 트랜스젠더 운동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지렁이는 요즘 뭐하냐고 묻는 것도 싫었고,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우리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운동을 하고 싶었고, 운동을 하면서도 내 자존감이 손상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는 운동, 함께 가자고 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운동을 하고 싶었다. 이런 나의 고민을 풀어준 것이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와 ‘(가)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이다. 이 두 단체는 지역과 당사자의 목소리를 함께 내면서 함께하는 운동을 나에게 제안해주었고, 나는 이 안에서 나의 갈증들을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다.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동네에서 퀴어로 어떻게 살 것인가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아래 ‘마레연’)는 2010년 3월 마포에 거주하는 LGBTQ 활동가들이 모여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정치를 이야기하고, 퀴어를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마포레인보우 유권자연대’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마레연은 선거 기간에는 후보들에게 질의 등을 하면서 사업을 진행해 나갔고, 선거 이후에도 다양한 지역의 의제에 함께 해나갔다. 2010년 12월 마포레인보우 유권자연대는 전체모임을 통해 앞으로 마포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하자고 결의하고 이름을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로 바꾸고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레연의 활동은 현재 다양한 마포 지역의 사안들(두리반, 강용석 의원 사퇴 촉구 등등)에 함께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들과 친목을 쌓아나가는 것을 주로 하고 있다. 마레연의 활동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내가 퀴어함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고 살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할 곳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동네에서 퀴어들은 비가시화되는 존재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퀴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퀴어 당사자들도 굳이 커밍아웃을 해서 불편함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포라는 지역을 보았을 때, 처음 모인 날 다섯 명의 활동가가 마포 지역에 사는 퀴어 친구들의 수를 100명을 채울 수 있었을 정도로 퀴어의 수가 많은 편이다.

물론 마포에 다른 퀴어 친목 모임들도 꽤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마레연이 다른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친목모임과 더불어 그 모임 내에서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매달 열리는 퀴어 밥상에서는 다 함께 만든 밥을 나눠먹으면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즈음의 사안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두리반이나 포이동에 후원을 하는 일을 하거나 성미산과 관련한 직접적인 액션을 하기도 하고 희망버스를 함께 타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한편에서는 그냥 동네에서 술을 함께 마시면서 동네의 공동체를 좀 더 공고히 해나기기도 한다. 마레연은 마포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내가 퀴어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모델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우리가 개개인의 동네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통반장이 되어서 동네의 일에 퀴어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까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을버스에 광고를 내고, 선거 때 적극적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등 하나하나씩 마을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살림의료생협-지역과 여성주의의 만남

이렇게 당사자로서의 내가 마레연이라는 곳에서 적극적 주체가 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면, 나는 (가)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아래 ‘살림의료생협’)에서 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살림의료생협은 마레연보다는 좀 더 지역이라는 곳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게 된 곳이다. 살림의료생협은 은평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 사안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고, 의료 혹은 건강이라는 것 자체가 어떠한 특별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도 하다.

살림의료생협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전에 다른 활동들을 할 때는 이슈 파이팅을 할 때도 거리의 무작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이 이슈를 개선시킬 수 있는 사람들(국회의원 같은?)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면 지역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 사람이 지역에서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나, 이 이슈 파이팅 이후 이 사람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생협은 활동가라는 이름보다 조합원이라는 이름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곳이고, 인권활동(!)이라는 거창한 제목보다는 소모임이나 조합원 모임이라는 소소한 느낌의 표현이 많아서 사람들이 덜 부담을 느끼게 되는 듯도 하다. ‘인권활동이 뭐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거라고 사람들은 이렇게 선뜻 발을 못 떼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제목이 가지는 힘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똑같이 무상급식을 이야기해도, ‘학생들의 인권’이라는 말보다는 ‘내 아이 건강’이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살림의료생협은 여성주의를 지향하고 있고, 여성주의적 가치를 중요하게 가지고 가는 의료생협이다. 살림의료생협을 은평 지역에 만든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매우 당황스럽고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이 내면에는 내심 여성주의라는 것이 아직은 많은 이들이 반기는 주제가 아니고 어떤 한 축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은평 지역에서 2년째를 보내고 있는 살림의료생협은 지금 꽤나 잘나가는 단체 중에 한곳이다. 처음 상근을 시작하면서 했던 고민이 ‘지역과 여성주의가 과연 맞닿을 수 있을 것인가?’였는데 지금 이 고민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비혼이거나 ‘꼴페미’들만 한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어떤 부분에서 부담스러웠을 여성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살림의료생협이 이야기하는 의료생협의 가치와 닿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몸으로 받아들여가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에게 여성주의를 꼭 실천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비혼을 존중해야 한다고 교육하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은 바뀌어 가고 있다. 처음에는 꼭 여성주의를 지향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성주의가 뭐야?”라며 불편함을 보이던 조합원들이 이제는 나서서 기초 여성주의 학교를 수강하기도 한다. 그 과정동안 우리는 우리를 많은 부분 있는 그대로 내보였고,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이 지역에서 함께 하고 싶어 하고 함께 삶을 지내갈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지렁이 활동을 할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지렁이 때는 사람들에게 내가 진정성이 있음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꼈다면 지금은 지역이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어서 일까? 내가 마음을 여는 만큼 사람들은 나를 믿어준다. 도리어 내가 이러한 그들의 열린 마음에 당황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나에게 이렇게 다가오는 걸까 고민을 할 정도이다.

마레연과 의료생협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내가 어떤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고민하고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는 느낌이다. 나만이 주체가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커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이 이후엔 나나 우리가 아닌 또 다른 우리가 더 함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인에 마음이 좀 더 편해지기도 한다.

지역은 운동이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성소수자, 여성주의자, 비혼이라는 퀴어한 주제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제까지는 진행하지 않았던 다른 비전을 고민하고 있다. 마레연은 내가 이 지역의 주민이라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심어주면서 성소수자라는 위치와 더불어 나의 주거권이나, 이 지역에서 주민으로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살림의료생협에서는 지역에서 여성주의자로 커밍아웃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고 누구도 여성주의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를 나에게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어떠한 운동이 더 옳거나 지향해야 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며 고민하던 것, 혹은 한계를 느꼈던 것들이 지역이라는 테두리를 씌우면서부터 조금씩 해갈되어간다. 소위 말하는 일반 대중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또한 일반 대중임을 잊고 지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아직은 지역의 사람들에게 내가 성소수자라고 혹은 비혼이나 여성주의자라고 100% 커밍아웃을 하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한 작은 커밍아웃에도 반응하고 변화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내가 나를 다 보여준다고 할 때 그것으로 더 많은 것이 변화될 수 있는 지역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소리 높여 설득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보고 느끼며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 사람에 대한 믿음을 좀 더 두텁게 할 수 있게 된 것. 이것이 내가 지역운동을 시작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2011/11/20 02:35 2011/11/20 02:35

관련 기사 1 -> 레디앙
관련 기사 2 -> 미디어오늘

관련기사가 두개 떴다.

그리고, 진보신당 당게시판에 뭔가 토론이 약간 벌어지는 듯 하다.(댓글을 볼 수 없으니 궁금할 따름)

전반적으로 주위 사람들 분위기는 '노회찬이 큰 사고를 쳤구나'이다.

정당에서 일을 했을때도, 정당 밖에 나와서 정치판을 바라볼때도, 정치인들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기만 한다.

맥락따위 다 제치고서라도, 노회찬은 잘못한거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게 만약 여성을, 혹은 장애인을 비유로 한 발언이었다면 할 수 있었을까?

그놈의 진정성 운운하긴 싫지만 운운하고 싶어지는 건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 그의 발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만 뒤져봐도 알 수 있으니, 그런 파장력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이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촌철살인'같은 '한방'에 통쾌해하며 '어록'에 올려야 한다는 말을 한다.

어떤 이는 지렁이의 성명서에 '피해의식'을 운운한다.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바로 '적극적' 대중의 반응 중 하나이다.

그리고 노회찬이 사과하고 재고해야 하는 부분이다.

100분토론과 맞먹는 공영방송에서 언제 그런 발언에 대한 사과나 정정 발언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사과를 한들, 당신의 물은 이미 엎어진 것이다.
2009/05/21 01:21 2009/05/21 01:21

요즘은 글을 볼때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때 트랜스젠더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된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는 '젠더 이분법을 위반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미가 더 크게 읽히는 듯 하다. 물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의미에서 모든 게이와 레즈비언은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미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섹슈얼을 나눠서 생각하고 있나?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미 운동판과 학술판에서 트랜스젠더는 다행히(?) 트랜스젠더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고, 그에 따라(?) 트랜스젠더 운동은 젠더 이분법에 대한, 혹은 다양한 젠더에 대한 운동으로 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이게 언어 혼용의 문제인지, 아니면 이사람들은 젠더위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트랜스젠더든 트랜스섹슈얼이든 성전환자든 뭐든, 현실은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현실안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 관해서만은 현실을 보지 않는 것만 같다.

나에게 트랜스젠더는 전혀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어간다. '젠더를 위반하는 자', '새로운 대안'의 트랜스젠더라니.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는 비가시화되는 느낌이랄까.

장채원씨가 자살을 하면서, 약간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관심이 반짝하더라. 그런데, 뭐... 결국은 다 흥밋거리-.

여전히 "트랜스젠더라는 존재가 있어요~"라고 떠들어야 하고, 새로운 젠더에 대해 앞장서서 말해야 하는게 트랜스젠더 운동인걸까.

뭔가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트랜스젠더운동을 막 바라보기 시작하는 비-성전환자인 사람들이 '바라는' 트랜스젠더 운동은 '젠더 이분법 타파, 다양한 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인것만 같아서 답답하다.

어떤걸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것만 생각하게 되는건지, 아니면 그게 제일 중요한거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의 가치인것인지 모르겠다.

현실에 대한 문제는 트랜스섹슈얼만의 문제가 아닌거고, 우리나라에서 소위 통용되는 '트랜스젠더'(섹슈얼을 포함한)의 문제이다. 그래, 물론 저런 문제들도 현실에 대한 문제이긴 하지. 사람들의 갇혀진 시각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하지만!

언제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두리뭉실함만을 이야기 할것인지, 난,.... 답답하고 서럽고 머리가 아프기만 하다.
2008/10/08 10:37 2008/10/08 10:37

지렁이가 단체명을 바꾸게 되었다.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에서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기존의 회원단체가 아닌, 활동가 중심의 단체로 가겠다는 발표이며, 좀더 다양하고 확장된 활동을 하겠다는 우리의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도 서툴게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지렁이이다. 꿈틀거리면서, 빠르진 않지만 꾸물꾸물 끊임없이 기어가고 있는 우리는 지렁이이다.

지렁이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매김하면서 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져왔다.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시 한번 논의하고, 다시한번 되새기며 성소수자에 관하여 그리고 트랜스젠더에 관하여 고민하게 된다.활동가가 히어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활동가는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거 같아서, 전만큼 쉽사리 뭔가를 지르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안그러고 산다는건 아니다)

활동을 해나가는 것에,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우리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을 보고, 질문하는 사람을 맞이하는것에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단체뿐만 아니라, 활동의 상 뿐만 아니라, 지렁이 사람들에게도 점점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캔디이지만, 또한 지렁이의 캔디이기도 하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당사자가 아님에 고민하고, 생각이 부족함에 고민하지만, 그마만큼이나 지렁이에 대한, 이 활동에 대한 나의 애정이 있음에 전보다 조금은 더 안심을 하게 된다.

트랜스젠더, 인권, 인권활동, 활동단체, 트랜스젠더인권활동...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이름들 속에 내가 가야할 길 또한 숨어있을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그렇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한다.

지쳐쓰러지는 일 따위는 이제 없고싶다.

2008/02/10 02:20 2008/02/10 02:2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간만에 지렁이에서 하는 행사다.
즐겁고 머리아픔이 공존하는 행복하고 대박나는 행사이길 빌고 있다.
많이많이 오세요~
2007/10/11 00:32 2007/10/11 00:32

얼마전 한 보고회에 참여를 했다가 친구로부터 "캔디는 지렁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순간 몸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 기분이 더욱 생생해진것은 다른분의 "저도 받아주실껀가요?"였던가..여튼 그런류의 농담조의 말.

모든 말의 바탕에는 "지렁이는 원래 당사자만 있는 단체 아닌가요?"라는 말을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항상 딜레마일 수 밖에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가 아닌 나"와 지렁이. 다른 대부분의 성소수자 단체들이 거의 당사자들을 활동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스레 지렁이도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단체는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모르겠는 문제이다. 나는 그저 이 단체의 취지에 동의하는것이고, 단체의 운동방향에 동의하는 것이고(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긴 어렵다) 이 단체의 사람들과 단체에 있는 내가 즐거워서 활동하는 것 뿐인데. 다른 단체의 사람들도 다 그런거 아닐까? 지렁이만 뭔가 특별한 단체인 것은 절대 아닌데, 이야기를 꺼낼때마다 나는 순간 뭔가가 죄스러워지고 조심스러워짐을 느낀다.

그들 말대로 나는 당사자가 아닌데, 당사자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는것일까? 당사자들만큼이나 절박함을 느끼고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있고 싶으니까"라는 말만으로 설명해서는 안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로도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분이 나를 너무 답답하게 한다.
2007/10/11 00:25 2007/10/11 00:25

성전환자 인권연대 지렁이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외부의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꽤 많이 함께 활동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지렁이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을 하게 되면서, 도대체 인권단체란 무엇일까, 어떤 운동을 하는것이 인권운동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성전환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호소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대변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는 성전환자 인권연대 지렁이. 우리는 일단 타이틀이 '성전환자'이고, 많은 활동가들이 성전환자 당사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권연대라는 타이틀을 걸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많은 사안들에 대해 연명을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의문스럽다. 인권단체가 해야 하는 일은, 그리고 지렁이가 해야 하는 일은 도대체 어디까지인 것일까.

이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것은 최근의 이랜드 사태때문이기도 한데, 많은 인권단체들이 상암 홈에버에 지지방문을 가고, 함께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 우리도 함께가서 투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방식으로 어떠한 지지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우리의 연대에 기뻐할까?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어간다.

물론, 정해져 있는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체마다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이 다를 것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도 각각 다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인권' -인간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 하고, 인간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인권단체일꺼라고 난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름'에만 너무 골몰한 나머지 성소수자의 인권(혹은 성전환자의 인권) 외의 것은 너무 등한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지 지금 우리의 여력이 안되고, 우리의 바탕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우린 너무 많은 다른 사안들을 등한시 하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단지 연명해서 이름하나 더 올려주는것으로 충분할까? 라는 생각도...

그리고, 지금 나는. 지렁이의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과연. 다른 수많은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분개하고 함께 해야 함을 고민하고 있기는 한걸까?

내가 생각하는 인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혹은 참여해야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할 듯 하다.
2007/07/12 21:00 2007/07/12 21:00

드디어 한무지 안티가 생겼다.

한무지씨 안티 까페가  생기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급한 연락을 받고 들어가 본 까페는 난리도 아니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대한 비판이나, '한무지'의 말하는 방식에 대한 비난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어이없다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의 내용은 그저 저사람이 '한무지'인게 싫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을 것이다.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저 싫은 사람 생겨서 이런 방식으로 '밟아보고 싶어요'라는 느낌이랄까.

서둘러 내용들을 캡쳐를 한 몇시간 후, 까페는 누군가의 신고로 폐쇄되었다. (사실 그 후에도 까페는 다시 한번 생겼었다 한다) 이런 내용들은 곧 성전환자 인권연대 지렁이의 블로그에 개시되었고, 한무지씨는 민사소송까지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자세한 내용은 지렁이 블로그의 한무지씨를 증오하시나요? 참조

무서웠다. 사람에 대한 이런 아무 이유없는 미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장난어린 미움으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깍아내리고 밟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도 아무 죄.책.감. 없이..

그들이 어리다는 것, 어려서 아직 인권에 대한 혹은 사람을 이야기 하는 방법에 대한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으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이'는 면죄부의 구실을 해줄 수 없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그정도는 알만한 나이라 생각이 된다.

만약 저런 안티까페를 성인이 만들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그들은 더 지능적으로 움직였을 것이고, 정말 한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한무지씨의 안티까페까지를 만들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느날 그저 베달여를 봤는데, 생전첨보는 무려 자신을 남자라고 하는 트랜스젠더가 나왔다. 트랜스젠더는 하리수만해도 웃긴데 쟤는 무려 남자시랜다. 그래서 맘에 안든다. 심심한데 얘나 한번 까대볼까? 였던 것일까?

그들의 '그저 싫음'과 '장난으로'의 맥락을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 알고 싶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다가 그런거니?

그러니까 사실 내가 알고 싶은건, 이들의 이런 것들을 통해, 사람들의 그저 싫음에 안티까지 행하는 그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방향이 궁금하다. 그들의 생각이 갈 거리와, 나의 생각이 바라볼 거리. 그 차이들. 그리고 혹은 같은 지점들. 어떻게 이 사건이 진행되어 나갈지..흥미롭다.

(아- 중구난방이다. 계속 정리를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아.. 관련된 다른 글. 루인의 베달여-한무지-무지증오, 1


 

2007/05/17 02:44 2007/05/17 02:44

[한무지의 인권이야기] 트랜스젠더에게 '1'과 '2'의 차이

                                                                                                                  한무지
사진설명<출처; berlin.cls.yale.edu>
한 트랜스젠더(성전환자)가 입사를 위해 면접을 보러 갑니다. 물론 1차 서류심사에 낼 이력서에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x’로 적어 넣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정장을 멋지게 빼입고 늦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면접 실에 도착한 후 여느 취업준비생과 마찬가지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면접관과 마주합니다. 어렵게 찾은 면접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기위해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합니다. 면접관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도 그/녀가 만족스러운 모양입니다. 면접이 끝난 후 가슴 졸이는 시간을 보내던 중, 회사에서 전화가 옵니다. “OOO씨,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이 벌어지는 입을 손바닥으로 애써 막으며 전화기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화기 속의 안내원은 몇 마디를 더 전달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시고요. 오실 때 주민등록등본 한 통하고, 통장 사본, 신분증 복사본 준비해오세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그/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 채 힘없이 의자에 걸터앉습니다. 수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어지러운 머리를 몇 번 도리질 치다가, 한번 부딪쳐 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여지없이 다가온 월요일, 그/녀는 준비된 서류를 들고 당당히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서류를 제출하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바삐 검토하는 회사 관계자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러나 결국 올 것이 오고 맙니다.
“엇? OOO씨, 남자/여자였어요?”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물어보면 뭐라뭐라 대답해야지 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지만, 과부화 걸린 컴퓨터처럼 ‘버벅’거리기만 하고 쉽사리 입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으며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트랜스젠더는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이 일치하지 않…….”
회사 관계자는 어느새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합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계세요. 추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돌아가야죠. 별다른 말 한번 해보지 못하고 ‘알겠다’는 말만 남기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래도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적어도 그 사람은 그/녀에게 정신병원에 가라느니, 더럽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그 회사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호적의 힘?

사진설명대한민국 '국민'으로 등록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주민등록번호와 호적을 갖게 된다.<출처; www.eastern.or.kr>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출생과 함께 ‘주민등록번호’라는 것을 가지게 됩니다. 만 17살이 되면 ‘주민등록증’이란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정 기간 내에 발급신청서를 작성하여 주민등록증을 교부받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되기도 합니다. 국가는 이렇듯 모든 사람들에게 일련의 관리번호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이 번호의 힘은 실로 막강합니다. 사회 속속들이 침투해 생활의 아주 밀접한 부분까지 관여하고 있습니다. 아주 가깝게는 친구들끼리 나이를 운운하며, 내가 더 많네 네가 더 많네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민증 까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술집에서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나이를 확인받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주민등록증을 제시합니다. 그 외에도 핸드폰을 개통할 때에나, 은행 통장을 만들 때, 수표를 제시할 때, 집을 계약할 때, 병원에 갈 때, 법률행위를 할 때, 불심검문을 받을 때 등등 수많은 공간과 상황에서 신분증을 통해 신분 확인을 ‘당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됩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선 신분증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등·초본에 통장사본, 심지어 호적등본까지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확인하는 문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확연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호적 문제

애꿎게도 주민등록번호는 생각보다 많은 개인정보를 제공합니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기본적인 생년월일과 이분법적인 성별, 심지어는 태어난 지역까지 알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들은 이 중에서도 특히 성별을 ‘2’와 ‘1’로 가르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째 숫자에서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일정 정도 치료가 진행된 트랜스젠더라면 당연히 호적상의 성별과 드러나 보이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으니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서 배제되기 마련이지요. 그 과정에서 느껴야하는 모멸감과 불편함, 불쾌감, 당혹스러움은 물론 실질적인 차별을 당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트랜스젠더들의 ‘취직’ 자체가 워낙 힘들다 보니 생계 문제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렇다 보니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지 않는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노동 도중에 사고를 당해도 보상은커녕 치료비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생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피할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멀고도 험난한 호적정정의 길

트랜스젠더들에게 호적이란 그들을 옥죄는 올가미와도 같습니다. 전국민에게 일련번호를 매기는 지금과 같은 주민등록제도가 없어져서 호적이니 뭐니 신경 안 쓰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서 호적정정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은 바꾸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수술을 진행 중이거나 끝마친 트랜스젠더들은 호적정정을 위해 발 벗고 나섭니다.

사실 알고 보면 호적정정의 법률적인 절차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호적정정신청서를 작성한 후, 주변인의 ‘인우보증서’(보통 그 사람이 남성/여성으로서 성공적으로 살아왔다는 서술이 들어갑니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과 정신과진단서, 수술증명서 등을 첨부하여 관할 지방법원에 제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이 없을 뿐더러 법률행위 자체에 대한 부담과 그 절차상의 어려움 때문에 보통은 변호사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변호사수임료가 정말로 가관입니다. 이게 무슨 소송도 아닌데 수임료로 1천만 원에서 5천만 원까지 요구합니다. 너무 비싼 수임료로 변호사 선임을 포기하고 홀로 준비하여 오래 기다리는 경우는 차라리 다행이지요. ‘없는’ 살림에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그 수임료를 충당했다는 경험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이 푹푹 새어 나옵니다.

호적정정 신청을 마쳤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땅히 관련법이 없으니, 호적정정 가부에 대한 판단은 오직 담당판사의 재량에 달려있는 것이고 판사의 가치관에 따라 기각과 허가가 판가름나게 됩니다. 이렇다 보니 ‘OO지법에 가면 정정을 잘해준다더라’하는 소문이 나면 그 지역으로 호적지를 이전해 정정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나마 지난 해 5월 대법원에서 FTM(*) 트랜스젠더의 호적정정에 관한 허가 판결이 나면서 희망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법률이 없다’, ‘대법원의 선 판례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되었던 사례들의 근거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트랜스젠더의 인권에 손을 들어주었던 기쁜 소식이었지요.

그러나 대법원은 뒤이은 지난 9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 지침’을 발표하면서 트랜스젠더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지침’이 가지고 있는 조항들은 트랜스젠더를 국가의 관리 대상이자 잠재적인 범법자라고 전제하고 있었을 뿐더러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성전환자 성별변경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와 함께 준비한 관련 법안 발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깊은 우려와 좌절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 외에도 호적관련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 호적정정 후에도 호적등본과 주민등록초본에는 정정사실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산을 넘었더니 건널 엄두도 나지 않는 넓은 강을 마주한 듯한 상황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문제가 아닌 것이 없으니, 가끔은 참으로 막막하기도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과 어떻게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할지……. ‘지렁이’ 활동가들은 서로 다독여가며 말하곤 합니다. 조금씩 천천히 오래오래 해나가자고, 그래도 꾸준히 시끄럽게 하다 보면 언젠간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 Female Transfer Male 혹은 Female To Male의 약자.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스스로 남성으로의 성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
덧붙이는글
한무지 님은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0 호 [입력] 2007년 02월 06일 21:15:11
2007/03/12 23:06 2007/03/12 23:06

[한무지의 인권이야기] "당장 죽더라도 수술대 위에서 죽고 싶어!"

                                                                                                                 한무지
지난해 초여름, 활동에 정신이 없을 즈음 경악할 만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평소 친분을 가지고 있던 FTM(*) 트랜스젠더 친구의 의료사고 소식이었습니다. 대전의 한 성형외과에서 싼 가격으로 가슴제거수술을 받기로 했던 그는 수술 후 10분 만에 봉합도 하지 않은 채로 퇴원해야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곧 실신을 했고, 119구조대에 의해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오른쪽 가슴부위의 과다출혈과 출혈된 피의 응고로 여차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도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그는 600cc의 응고된 피를 제거하는 등의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 그와 나눈 대화에서, 그는 수술 도중 “이거 이렇게 해도 될까요?”, “뭐 문제 있겠어? 있으면 다시 해주던가 아님 긁어 내면되지”, “이번에는 티(T)자로 해볼까요?” 등과 같은 의사들의 대화를 들으며 마치 ‘마루타’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 병원 측에 항의를 했으나 “상황이 딱한 것 같아 비싼 수술을 절반가격에 해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섭섭하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의료 가이드라인의 부재

장문의 메일로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치료를 시작하려고 하는 트랜스젠더인데 호르몬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며 수술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것이 대다수입니다. 답메일을 한참 쓰다가는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까요?” 하는 질문에서 말문이 턱 막히고는 맙니다. 나 역시도 임상경험이 없는 개인병원에서 시술을 받았다가 좋지 못한 결과를 얻은 당사자 중의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 치료를 시작하려면 정신과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 후에 ‘성주(정)체성장애’라는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 후 가장 첫 번째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상당 시일이 지난 후에 성전환수술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기준에 맞춰 성실히 답메일을 쓰려 노력하지만 암담한 현실 때문에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30만 원에서 100만 원을 호가하는 정신과 진단서, 그나마도 ‘성주체성장애’에 관해 진단을 내려줄 수 있는 정신과전문의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사실 ‘장애’도 아닌데 ‘장애’ 진단을 내리려고 하니 쉽지 않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비싼 가격 앞에서 매번 좌절하게 됩니다. 호르몬 치료라는 것도 뚜렷한 임상결과가 없어서 어떠한 부작용을 초래할지 예상할 수 없을 뿐더러 그 비용도 천차만별이기 일쑤입니다. 의료보험적용가가 2,000원~2,500원 하는 약을 2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까지 요구하는 것을 보면 쉽사리 파악할 수 있지요.

일정 정도 호르몬 치료가 진행되어 수술을 결심하면서부터는 더욱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말 그대로 성전환수술의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작업들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수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당사자들은 일일이 발품을 팔거나 비공식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형외과나 비뇨기과를 돌아다니며 수술을 해줄 수 있는 지 여부를 묻고, 가격을 ‘흥정’하는 상황들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합니다.

이러한 현실과 일종의 원칙 사이에서, 치료 시작의 꿈에 부풀어있는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전달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한무지, 그의 이야기

한 달에 10만 원을 가지고 생활하며 모았던 돈으로 가격을 ‘흥정’하여 수술을 했다가, 말 그대로 ‘낭패’를 본 나의 경험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문득 처음 호르몬치료를 시작할 때의 상황들이 떠올랐습니다.

2년여 전 치료를 결심하고 신경정신과를 찾았습니다. 네 차례 정도는 경험이 없다며 되돌아가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다섯 번째 찾아간 병원에서는 가끔 MTF(**) 트랜스젠더가 병역면제를 위해 진단서를 끊으러 오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성주체성장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열심히 토로하더니, 상당한 분량의 검사지를 던져주었습니다. 진단서의 가격은 100만 원 가량 이란 말과 함께 말입니다.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힌 돈 5만 원이 전부였던 저는 접수처에 서있던 간호사의 이상한 웃음을 뒤로하고 도망치듯이 병원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FTM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한 형에게 약을 얻었고, 주사기를 사다가 공중화장실에서 첫 주사를 맞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위험하고 옳지 못한 시작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앞으로의 수술계획과 인생계획 등을 세우며 힘들기만 했던 지난 시간들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던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그 뒤 몇 차례 종로 등을 드나들며 불법으로 호르몬을 구입하여 자가 주사를 하다가 진단서 없이 성형외과를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병원에선 별다른 말없이 처방전을 발급해주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6월 일이 터졌습니다. 호르몬이 원래 간에 큰 무리를 주는지라 정기적으로 간 기능 검사를 해왔는데, 간에 0.5cm짜리 종양이 잡힌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의사로부터 ‘죽고 싶으면 호르몬 투여를 계속하라’는 엄명을 안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후 9월 1차 수술인 가슴제거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흥정’한 가격으로 싸게 수술을 하게 되었으나 그 경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수술 후 고인 피를 빼내 주는 ‘드레싱’이란 것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미흡했던 모양입니다. 한 쪽 가슴이 공이 터지기 직전의 상태처럼 빵빵하게 차오르기 시작했고 수차례 15cm나 되는 바늘을 가슴에 찔러가며 피를 뽑아내었습니다. 결국은 양쪽 가슴이 찌그러진 양상으로 남아 심각하게 재수술을 고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진설명지난해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제정을 위한 공동연대 발족식. 트랜스젠더들의 인권을 위해선 안전한 성전환 수술을 위한 법제정도 필요하다.<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당장 죽더라도 수술대 위에서 죽고 싶어!”

‘죽고 싶으면 호르몬 투여를 계속하라’는 의사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호르몬투여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 끝에 결국 호적정정이 이루어진 지렁이의 한 활동가는 당뇨와 각종 합병증으로 성전환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여전히 수술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항상 이야기하곤 합니다.
“당장 죽더라도 수술대 위에서 죽고 싶어!”
대부분의 트랜스젠더에게 치료와 수술은 절대적이라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여성/남성의 육체에 갇혀있는 남성/여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은 평생을 성별위화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을 것이고, 또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치료와 수술은 이들의 인생에 있어 ‘목표’이고 자신의 인생을 ‘긍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매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또 한 번 좌절하고 마는 일들이 되풀이 됩니다. 이것은 호적 등의 문제로 취직이 불가능해 먹고 살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보려는 이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생채기를 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욕심일까요? ‘성주(정)체성장애의 진단부터 치료와 수술까지 체계적으로 정보 등을 제공 받을 수 있는 나라’ 그리고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되는 사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2007년 그 것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합니다.

(*) Female Transfer Male의 약자.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스스로 남성으로의 성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
(**) Male Transfer Female의 약자.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스스로 여성으로의 성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
덧붙이는글
한무지 님은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6 호 [입력] 2007년 01월 09일 17:58:46
2007/03/12 23:05 2007/03/12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