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깟 인정이 무슨 문제이냐 싶지만, 인정받고 싶다.

오늘은 사랑하는 이의 아버님의 제삿날이다.

분명 동생과 어머니 둘이서 분주히 제사 음식을 만들고 있으시겠지.

갑자기 가서 함께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깔깔 웃으면서 일도 돕고, 못하는 나를 장난끼어린 목소리로 타박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가르쳐 주기도 하는, 그런 분위기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그사람의 연인으로 파트너로, 한 가족을 받아들여주고 함께 그런 일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그깟 가족이 무어길래!" "나는 나, 가족은 가족!"을 생각하기도 하는 나와는 또 참 모순된 일이다.

조심조심 그사람에게 함께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가족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우리 둘의 관계를 좀 더 공고히 하고 싶다는 나만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욕망. 잘못된 방법. 하지만 그걸 꼭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나의 가족과 다른이의 가족과 그저 인정받고 함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것. 하지만, '나의'가족에게 더이상 스트레스는 받기 싫은 것. '다른' 가족은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걸까? '인정' 받은 이후의 상황은 왜 생각하지 않는것인지... 욕망 이후의 상황에 눈을 돌리지 않는 내가 참 우습기까지 하다.

'가족'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점점 더 어떤 것이 옳고, 어떤것이 바른 방법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2007/09/21 17:12 2007/09/21 17:12

something 2007/08/18 13:48


그 사람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때, 그때의 나른한 느낌을 난 잊을 수 없다.

붕어와 맞먹는 기억력을 가진 내가 그 오래된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기묘한 일이다.

그날은 아마도 따뜻함이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봄날이었다. 그 사람과 나는 한가로이 길을 거닐고 있었다. 그 사람과 나는 알게 된지 한 달 쯤 된 사이였다. 우연히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있잖아. 잘 모르지만 만나면 "아~ 안녕 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하며 반가운 듯 인사를 나누는 그런 사이.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린 정말 별 사이도 아니었다는 거다. 그저 날이 따뜻했고,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한가로이 거리를 좀 거닐 시간이 생겼을 뿐이다. 그 사람 또한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함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특별하다. 나는 학교에서 움직이는 일 이외에 애인을 제외하고는 함께 오랜 시간 거리를 거닐어본 기억이 없다. 함께 걸을 필요가 없는 거리를 걷는 건, 일종의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날같이 날씨조차 따뜻한 날은 그 따스함조차 함께 나누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따스함을 함께 나누는 사람. 그게 그날의, 그리고 지금의 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본래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어제도 한밤중에 뛰어나가 한강을 따라 한 두어 시간을 걷고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스산한 바람의 냄새가 나를 부르는 거다. 뭔가 유치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만큼 난 그 냄새에 취했고, 미친 듯 걷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는 거리에 도착해 있어 택시를 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튼, 이렇듯 나에겐 걷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 시간도 여유가 있는데 전 사무실까지 좀 걸어볼까 봐요"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뜨악한 모습을 뒤로하고 "앗! 그래요? 그럼 저도 같이 걸어요."라는 대답을 해주는 사람을 보는 순간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종로에서 시청을 거쳐 홍대까지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그 긴 시간을 그 사람은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으로 함께 해주었다.

그렇게 걷는 내내 나는 혼자 신이 나서 뭔가 잔뜩 떠들어댔었고, 그 사람은 웃으며 응수를 해줬다. 그렇게 걷고 걸어 도착한 한낮의 홍대 앞 놀이터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밤의 시끌벅적함에만 익숙해졌던 탓일까. 나름의 고요함을 가지고 있는 그 기이한 공간에서 몇 시간 동안 걸었다는 자각과 함께 온몸이 쳐지기 시작하는 거다.

퓨즈가 나간 로봇마냥 나는 그렇게 넘어지지 못해 앉아있었다. 그 내리쬐는 햇살을 여과 없이 맞으며 광합성을 하는 이파리인 마냥 그저 그렇게 멍- 하니 한참을 정신없이 있었나보다. 내 머리로 손이 내려왔다.

햇살사이로 내려온 손이 내 머리에 안착했고, 가벼이 쓸어 넘기듯 내 머리를 토닥여줬다. 그 순간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되어 그 사람의 손에 머리를 부비며 충만한 나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햇살 안에는 내가, 햇살이 가려진 곳에는 따스한 그 사람의 손이 있었고, 그 손은 나의 모든 감각 속으로 파고들어와 예민하던 그 감각들의 끈을 하나하나 풀어 주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아니 내 머리는 그 사람을 아니 그 사람의 손을 마음깊이 원하게 되었다. 그 느낌은 너무도 강렬해서, 뼛속까지 파고들어 나를 도취시켰으며 그 중독이란 어떠한 환각제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 더 커다란 것이어서 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여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처절하게 원하게 되었고, 그 간절함은 인간의 도덕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라 말할만큼의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그 '찰나의 순간'에 말이다.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시간 현재 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라 불리우는 존재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을 따라야 아무런 불편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의 손을 - 이 사람이 아니라 - 원하고 있는것이다. 그것도 이 사람의 손이라기 보다 이 사람의 손이 나에게 준 그 나른한 느낌만을 지속적으로 원하고 있는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첫 생각은 그 손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그 손을 어떻게들 잘라내어 내가 소유하는것. 하지만 그런 방법은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 따스함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었다. 잘라낸 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르말린 처리를 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면 그 손은 더이상 움직일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두번째 방법은 그사람을 계속 만나는것이었다. 그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은 나에게 그 손의 따스함을 지속적으로 전해줄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방법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나는 원치 않는 감정적 신체적인 소모를 계속 해 나가야만 할 것이었다. 과연 그 방법을 현명하다 말 할 수 있는가.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하늘은 붉어지던 시간을 지나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시간은 또 언제가 될지 모르고, 내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어떻게든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당장 그 손을 포기한다 생각하기엔 나의 간절함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를 잃지않고, 내 것을 잃지 않고 그것을 얻는 방법. 설사 그에게 치명적이 되더라도 나는 그 것을 얻어야만 했기에 그 순간의 나는 악마와의 계약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난 선택을 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따스함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저 그 손을 원할 뿐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그 손만을 가지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따윈 없었던 것이다. 손만을 원한다면 손만을 가져야 하는 것이었고, 나는 다른 모든것을 포기하더라도 첫번째 선택 이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그 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기가막힌 발생을 생각해 낸 나에게 찬사를 보내며 나는 그 밤을 손과 함께 보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나는 나의 잘못된 결정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내가 원하는 그 손은 적당한 높이에서 나에게 안착해야만 하며, 그 날과 같은 햇살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걷고난 후 피곤해진 나의 상태에서라야만 갈구되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시간동안 고민하고 쥐어짜낸 이것들은 다 무어란 말인가. 결국은 전후를 망각한 과도한 욕망과 집착만으로 쓸데없는 고생을 했다고 밖에 할 수 없게 되어버린것이다.

사람의 욕망이란 이렇게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일까. 지금의 나는 후회하고 후회하며 그 기억에 파묻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

나의 나른했던 봄날에 대한 기억은 단지 순간의 찰나의 기억이었을 뿐이다.

그 순간과 찰나의 욕망은 한가지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그 복합적인 모든것들에 대한 간절함이었음을 왜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일까.

결국 나는 그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서 허우적대며, 말라비틀어진 손가락들을 만지작 거리는 것을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의 욕망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가 주지 못했으며, 그 선택의 끝에서 나는 절망하고 절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욕망. 선택. 그리고 후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되풀이.


그게 '나'라는 인간이며, '나'라는 인간의 한계인것일까.

되풀이 하는 실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이번엔 좀 더 따뜻한 손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2007/08/18 13:48 2007/08/18 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