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의 급한 제보가 들어왔다.

- 너 퀴어문화축제에서 사회봤냐? 너 커밍아웃에 나왔어. 모자이크 처리 했어도 다 알아보겠더라.

순간 많이 당황하고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빨간띠도 안하고 배째라 하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식으로 방송에 나오고 싶지는 않거든-
한밤중에 미친듯이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방송을 다운받으려 했으나 하루이틀밖에 안지난지라 파일은 아직 올라오지도 않은 상태. 일단 퀴어문화축제쪽에 연락을 해놓고, 방송을 보고 이야기를 하자라고 했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하루를 보내고, 오늘 드디어 재방송을 볼 수 있었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지렁이 행사중 사회를 보다가, 카메라를 들고 계신 분이 press 카드를 안하고 계셔서, press 신청을 하셔야 촬영이 가능하십니다~ 라고 말을 했던 부분이었다. 그다지 문제가 되는 부분도 아니고, 몸체가 다 뭉개져서 나왔기 때문에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걱정을 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지렁이 행사 부분이 나왔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전-혀 나오지 않았다)

요즘들어서 방송에 내가 노출이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 두려움을 상당히 갖게 되는 것 같다. 얼마전 촛불집회에 갔을 때도, 방송 촬영 카메라만 보면 얼굴을 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왜? 왜? 왜?

나는 무엇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걸까. 가족들이 내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알까봐? 아니면 단지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 장소에 나타나는 내 모습에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설명하는게 귀찮아서?

내가 장기적으로 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면, 그리고 그 활동이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나를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족들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다.

어떤 커밍아웃을 나는 해야 하는걸까?

1. 난 결혼 안할꺼예요. - 이건 했고...
2. 난 퀴어운동, 여성운동을 하고 있어요. - 이것만 하면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 같고....그냥 인권운동 차원에서 받아들이려나?
3. 난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 네가 그런걸 왜하냐? 네가 트랜스젠더냐? 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이건 좀 복잡해질 것도 같다.
4. 난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이건 좀 쉬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여성학과라는 타이틀이 있고, 그것과 관련해서 하고 있다..라고 하면, 그냥 대강 넘어갈 수 있을지도?
 5. 난 바이섹슈얼이예요 - 이것도 좀 복잡하다. 가족들이 일단 바이가 뭔지 알까? 바이라서 결혼을 안한다라고 생각할까? 그래도 남자 만나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고 말을 하려나???

가족들과 전혀 공유가 되고 있지 않은 나의 다양한 정체성을 공유하려고 생각하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순서가 전혀 정해지지 않는다.

아..그리고 왜 커밍아웃이 두려운지 방금 깨달았다. 난 끌려내려갈까봐 두렵다. 울 엄마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끌려내려가지 않으면 엄마가 서울로 올라와서 나랑 같이 살꺼다. 그것도 정말 싫다.

여튼, 아직은 그 때가 아닌 것 같다. 천천히 하나씩 납득이 가도록(갈까?) 익숙해지도록 해 나가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부터 할지는 지금부터 생각해 보자.




2008/06/20 02:47 2008/06/20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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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z 2008/11/09 11:5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안녕하세요..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