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2007/08/18 13:48


그 사람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때, 그때의 나른한 느낌을 난 잊을 수 없다.

붕어와 맞먹는 기억력을 가진 내가 그 오래된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기묘한 일이다.

그날은 아마도 따뜻함이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봄날이었다. 그 사람과 나는 한가로이 길을 거닐고 있었다. 그 사람과 나는 알게 된지 한 달 쯤 된 사이였다. 우연히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있잖아. 잘 모르지만 만나면 "아~ 안녕 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하며 반가운 듯 인사를 나누는 그런 사이.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린 정말 별 사이도 아니었다는 거다. 그저 날이 따뜻했고,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한가로이 거리를 좀 거닐 시간이 생겼을 뿐이다. 그 사람 또한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함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특별하다. 나는 학교에서 움직이는 일 이외에 애인을 제외하고는 함께 오랜 시간 거리를 거닐어본 기억이 없다. 함께 걸을 필요가 없는 거리를 걷는 건, 일종의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날같이 날씨조차 따뜻한 날은 그 따스함조차 함께 나누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따스함을 함께 나누는 사람. 그게 그날의, 그리고 지금의 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본래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어제도 한밤중에 뛰어나가 한강을 따라 한 두어 시간을 걷고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스산한 바람의 냄새가 나를 부르는 거다. 뭔가 유치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만큼 난 그 냄새에 취했고, 미친 듯 걷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는 거리에 도착해 있어 택시를 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튼, 이렇듯 나에겐 걷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 시간도 여유가 있는데 전 사무실까지 좀 걸어볼까 봐요"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뜨악한 모습을 뒤로하고 "앗! 그래요? 그럼 저도 같이 걸어요."라는 대답을 해주는 사람을 보는 순간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종로에서 시청을 거쳐 홍대까지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그 긴 시간을 그 사람은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으로 함께 해주었다.

그렇게 걷는 내내 나는 혼자 신이 나서 뭔가 잔뜩 떠들어댔었고, 그 사람은 웃으며 응수를 해줬다. 그렇게 걷고 걸어 도착한 한낮의 홍대 앞 놀이터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밤의 시끌벅적함에만 익숙해졌던 탓일까. 나름의 고요함을 가지고 있는 그 기이한 공간에서 몇 시간 동안 걸었다는 자각과 함께 온몸이 쳐지기 시작하는 거다.

퓨즈가 나간 로봇마냥 나는 그렇게 넘어지지 못해 앉아있었다. 그 내리쬐는 햇살을 여과 없이 맞으며 광합성을 하는 이파리인 마냥 그저 그렇게 멍- 하니 한참을 정신없이 있었나보다. 내 머리로 손이 내려왔다.

햇살사이로 내려온 손이 내 머리에 안착했고, 가벼이 쓸어 넘기듯 내 머리를 토닥여줬다. 그 순간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되어 그 사람의 손에 머리를 부비며 충만한 나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햇살 안에는 내가, 햇살이 가려진 곳에는 따스한 그 사람의 손이 있었고, 그 손은 나의 모든 감각 속으로 파고들어와 예민하던 그 감각들의 끈을 하나하나 풀어 주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아니 내 머리는 그 사람을 아니 그 사람의 손을 마음깊이 원하게 되었다. 그 느낌은 너무도 강렬해서, 뼛속까지 파고들어 나를 도취시켰으며 그 중독이란 어떠한 환각제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 더 커다란 것이어서 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여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처절하게 원하게 되었고, 그 간절함은 인간의 도덕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라 말할만큼의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그 '찰나의 순간'에 말이다.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시간 현재 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라 불리우는 존재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을 따라야 아무런 불편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의 손을 - 이 사람이 아니라 - 원하고 있는것이다. 그것도 이 사람의 손이라기 보다 이 사람의 손이 나에게 준 그 나른한 느낌만을 지속적으로 원하고 있는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첫 생각은 그 손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그 손을 어떻게들 잘라내어 내가 소유하는것. 하지만 그런 방법은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 따스함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었다. 잘라낸 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르말린 처리를 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면 그 손은 더이상 움직일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두번째 방법은 그사람을 계속 만나는것이었다. 그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은 나에게 그 손의 따스함을 지속적으로 전해줄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방법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나는 원치 않는 감정적 신체적인 소모를 계속 해 나가야만 할 것이었다. 과연 그 방법을 현명하다 말 할 수 있는가.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하늘은 붉어지던 시간을 지나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시간은 또 언제가 될지 모르고, 내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어떻게든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당장 그 손을 포기한다 생각하기엔 나의 간절함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를 잃지않고, 내 것을 잃지 않고 그것을 얻는 방법. 설사 그에게 치명적이 되더라도 나는 그 것을 얻어야만 했기에 그 순간의 나는 악마와의 계약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난 선택을 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따스함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저 그 손을 원할 뿐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그 손만을 가지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따윈 없었던 것이다. 손만을 원한다면 손만을 가져야 하는 것이었고, 나는 다른 모든것을 포기하더라도 첫번째 선택 이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그 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기가막힌 발생을 생각해 낸 나에게 찬사를 보내며 나는 그 밤을 손과 함께 보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나는 나의 잘못된 결정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내가 원하는 그 손은 적당한 높이에서 나에게 안착해야만 하며, 그 날과 같은 햇살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걷고난 후 피곤해진 나의 상태에서라야만 갈구되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시간동안 고민하고 쥐어짜낸 이것들은 다 무어란 말인가. 결국은 전후를 망각한 과도한 욕망과 집착만으로 쓸데없는 고생을 했다고 밖에 할 수 없게 되어버린것이다.

사람의 욕망이란 이렇게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일까. 지금의 나는 후회하고 후회하며 그 기억에 파묻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

나의 나른했던 봄날에 대한 기억은 단지 순간의 찰나의 기억이었을 뿐이다.

그 순간과 찰나의 욕망은 한가지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그 복합적인 모든것들에 대한 간절함이었음을 왜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일까.

결국 나는 그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서 허우적대며, 말라비틀어진 손가락들을 만지작 거리는 것을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의 욕망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가 주지 못했으며, 그 선택의 끝에서 나는 절망하고 절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욕망. 선택. 그리고 후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되풀이.


그게 '나'라는 인간이며, '나'라는 인간의 한계인것일까.

되풀이 하는 실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이번엔 좀 더 따뜻한 손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2007/08/18 13:48 2007/08/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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