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준비중

something @ 2010/08/09 19:26

논문 준비를 시작했다. 빠듯한 시간, 빠듯한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 논문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내 논문이 엄청난 파장력을 가진 글이 되길 바랬었다.

내 논문이 한국 사회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으리라 이상한 망상을 품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논문을 쓰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이야기 한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석사 논문이라는 것이 엄청난 것이 아니라, 내가나로서 글을 쓰는 준비의 시작이라는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열심히 써야지.

즐겁게 써야지.

2010/08/09 19:26 2010/08/09 19:26

친구

something @ 2010/03/22 19:22

친구가 있다.

아주, 소중한 친구가 있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특별했고, 항상 나에겐 특별한 친구.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가, 다시 나를 보고 웃는다.

친구때문에 슬퍼서, 기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번엔 무슨일이 있어도 손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욕심도 부리게 된다.
(그런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친구가 있어서, 고맙고 행복하다.
2010/03/22 19:22 2010/03/22 19:22


다시 광화문에서

글.곡 : 이광석
편곡 : 우리나라
건반녹음 : 이혜진
기타녹음(A.G / E.G), 리듬 프로그래밍 : 백자
노래 : 한선희, 이혜진, 백자, 이광석

기억해요 우리를 광화문네거리 하얗게 밝히던 우리
기억해요 우리를 수많은 밤들에 피어나던 노래

(*)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우리 촛불의 바다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오늘의 함성 뜨거운 노래 영원히 간직해요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다시 한번~



----------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제때 유난히 가슴을 울리던 노래.

사실, 광화문에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아니, 광화문에서 구호를 외치고 누군가 다칠까 마음 졸이는, 그런일이 싫을 뿐이다.(그렇다고...내가 남들보다 광화문에 더 오래 머물거나, 그러는 사람도 아니지만...어쨌든 그렇다는 거다;;;)

광화문에서 퀴어문화축제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2009/06/21 20:47 2009/06/21 20:47

다행히, 다시 사용허가가 났고, 가보지는 못했지만, 잘 상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내일은 어떻게든 가보아야겠다.

------------------------------------------------------------------------------------


좀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첨에 허용이 된거니까, 잘 되겠지...라고 속으로 지지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인권영화제, 청계광장 사용 불허 통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젠장.

이럴 줄 알았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간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든다.

국가의 야박함과 야비함과 비열함과 치사함과.........xxxxxxxxxxxxxx!!!!!!!!!!!

그래도, 그래도, 건강하게 싸우고, 즐겁게 상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 기자회견도, 힘내서 하고, 힘내서 하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5일엔, 청계광장에 들러서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야겠다.

인권영화제도, 퀴어영화제도 건강하게 대박났으면 좋겠다.

2009/06/04 00:21 2009/06/04 00:21

둥냥이가 임신을 했어요.

전부터 가끔 글을 올려서 아시겠지만,  둥냥이는 우리집에 업둥이로 들어온 둘째입니다.

집에 왔을때 3개월쯤이 되었으니 이제 한 7개월이 채 안된 아이지요.

그럼 아이가 아마도 다음주면 엄마가 되요.

아빠는.....꿈냥이;;;

둥이가 처음 들어오고 부랴부랴 꿈냥이 중성화를 시키러 갔을때, 선생님께선 1년이 안된 아이를 중성화 시키면 나중에 요도 질환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더랬어요. 그래서 그때는 무서운 마음에 중성화를 못시키고 돌아왔다가, 아니되겠다 싶어서 몇달 있다가 그래도 데리고 가서 중성화를 시켰더랬지요.

제 잘못이예요. 그 사이에 저 어린것이 발정이 나서 사고를 칠줄 상상도 못했거든요. 계속 읽어왔던 발정난 암냥이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는건 핑계지요.(선생님 말씀으로는 발정이 나자마자 교배를 했을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게다가 임신해서 배가 부르는걸 처음의 식탐만 생각하고 살이 찌는거라 생각한 제 잘못이지요.

계속되는 죄책감과, 미안함과 불안함에...어쩔줄을 몰라했어요.

보통 냥이들은 임신을 해도 1년은 넘어서 하는게 좋대요. 우리 둥냥이는 거의 중학교 1학년이 임신한 대 사건인거예요.

여튼, 그렇게 미안해만 하다가 오늘 병원에 다시 다녀왔어요.

이달 초에 초음파를 했을땐 4마리가 보인다고 하셨는데, 오늘 최종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으니 여섯아이가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여섯마리의 꼬물이가 우리 둥냥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새생명의 탄생이니 둥이에게 힘을 주고 축하해줘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아이들 모두와 함께 평생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저도 더욱 더 열심히 살면서 아이들을 보살펴야겠구요.

시껌댕이 꿈냥과 삼색이 둥냥의 아이.

사랑스러운 여섯 꼬물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내라고, 그래서 건강히 출산하고 예쁘게 자라길 빌어주세요.

2009/05/25 19:07 2009/05/25 19:07
관련 기사 1 -> 레디앙
관련 기사 2 -> 미디어오늘

관련기사가 두개 떴다.

그리고, 진보신당 당게시판에 뭔가 토론이 약간 벌어지는 듯 하다.(댓글을 볼 수 없으니 궁금할 따름)

전반적으로 주위 사람들 분위기는 '노회찬이 큰 사고를 쳤구나'이다.

정당에서 일을 했을때도, 정당 밖에 나와서 정치판을 바라볼때도, 정치인들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기만 한다.

맥락따위 다 제치고서라도, 노회찬은 잘못한거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게 만약 여성을, 혹은 장애인을 비유로 한 발언이었다면 할 수 있었을까?

그놈의 진정성 운운하긴 싫지만 운운하고 싶어지는 건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 그의 발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만 뒤져봐도 알 수 있으니, 그런 파장력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이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촌철살인'같은 '한방'에 통쾌해하며 '어록'에 올려야 한다는 말을 한다.

어떤 이는 지렁이의 성명서에 '피해의식'을 운운한다.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바로 '적극적' 대중의 반응 중 하나이다.

그리고 노회찬이 사과하고 재고해야 하는 부분이다.

100분토론과 맞먹는 공영방송에서 언제 그런 발언에 대한 사과나 정정 발언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사과를 한들, 당신의 물은 이미 엎어진 것이다.
2009/05/21 01:21 2009/05/21 01:21

29년째의 5월 18일

something @ 2009/05/18 16:04

 평생 갈지도 모르는 태생적 트라우마.

난 5월에 잉태된 아이이다.

난, 80년 5월에 잉태된 아아이고,

난, 80년 5월에 광주에서 잉태된 아이이다.

어떤 이에게 이 일은 별 것이 아닐 것이지만,

나에게 이 작은 태생의 사건은 평생을 가지고 가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빠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다. 얼핏 들은 말에 의하면, 대학생은 다 죽어나갔기 때문에,  아빠는 엄마와 함께 결혼식 사진을 들고 길을 걸었고, 결국은 운영하던 가게에 숨어 계셨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 부모님은 살아남은 사람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자들보다 많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에 접했던 90년대 초반의 집회. 최루탄 내음 가득한 거리와 거리 가득한 사람들. 누가 시민이고 누가 대학생이었는지, 사실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빠의 나에 대한 첫번째 요구는 "대학에 가면 절대 술.담배.운동을 하지 말것"이었다. 나는, 이 요구를 중학교때 전해들었다.

대학에 들어간 첫해, 선배는 소위 빨간책이라 불리우는 것을 빌려준다. 난, 그 책을 읽지도 못했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그 제목의 책을 보자마자 아빠는 내 눈앞에서 책을 발기발기 찢어버렸다.

그게, 부모님의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5.18을 접했을 때가 아마 중학교때였을게다. 글짓기 대회를 하러 묘역에 갔고, 처음으로 그들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도, 기억도 희미하지만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여전하다.

고등학교때는 5.18 일일 체험학교에 갔었다. 그때도 난 울었던가...

고등학교때 5.18은 그냥 하나의 행사였다. 시에서는 80년 5월 18일에 태어난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주었다. 죽지 않고 태어나준것이 감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이후, 5.18은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어가 되기 시작했다.

개뿔 5.18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도, 나는 광주 사람이고 80년에 잉태된. 그 총소리 속에서 잉태된 아이였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엔,

난 항상 마음속 가득 납덩어리를 안고 산다.

난, 기억해야 하고

난, 잊지 말아야 하고

난, 이야기 해야 한다.

난, 광주의 아이이다.


5월만 되면, 마음이 너무 무겁다.

모든 도시가 공감하고 있었기에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 시절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5월을 잊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5월은 "우리의 5월"이지 않았기 때문일테다.

우리의 5월은 매년 다가오고,

각자는 그 트라우마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간다.

어떻게든....살아간다.



2009/05/18 16:04 2009/05/18 16:04
5.18을 전후하면, 늘 기분이 우울해진다.

이번 5.18도 별다르지 않다.

이건 아마 태생적 트라우마가 아닐까.

이번 5.18은 게다가 광주에선 전남도청건으로 시민들의 반응마저 좋지 않다고 한다.

서울은? 여전히 조용하다. 내가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나빠졌을 가능성은 높다)

내일은 3xFTM의 기사 시사회가 있는 날.

그리고 오늘 지렁이는 노회찬 대표의 100분토론에 대한 성명서 발표를 했다.

트랜스젠더 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왔고, 그 과정에서 정말 정말 회노애락을 다 경험하게 된다.

가끔은, 그런 감정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 기분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한숨만 나온다.

정말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2009/05/18 02:17 2009/05/18 02:17

여유로운 시간.

something @ 2009/05/02 23:22

어머니와 고등어, 브라운 센트, 센터, 작은 나무
맛있는 점심, 무난한 차, 후다닥 정리한 글, 목적없는 계모임 추진위 결성.

이것은 오늘 오후 2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한 인물과 이뤄낸 나의 성과.

간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감정적으로 부대끼는 일이 많았던 만큼 편안한 사람과의 여유로운 시간은 나를 풍요롭게 해준다.

덕분에 충천이 좀 되었음!

(와서 우다다 백사장- 우리 고냥님들이 모래를 쏟아 만들어진 모래 구덩이들 - 을 치울 수 있는 힘이 생긴 정도?)




2009/05/02 23:22 2009/05/02 23:2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엄청난 증언을 들었다.

내 친구 S양, 어쩌니 저쩌니 해도 10년이 넘게 나를 만나오고 있는 친구시다.

그런 친구께서!

나보고 인기 많았고, 주변에 남자도 많았댄다.(여기서 정체성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어쨌든!)

그럤군...

난 인기많은 여자였던 거야..ㅠ

근데 왜!!!

왜 지금은 이런거냣!! (버럭!)

2009/04/03 16:04 2009/04/03 16:04
« PREV | 1 | 2 | 3 | 4 | 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