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너무 바빴다. 학교 일은 학교 일대로, 활동은 활동대로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주일 내내 용인과 서울을 왕복해야 했다.

그러면서 드러났던 몇가지 갈등을 겪으면서 도대체 이 갈등들은 어떻게 표출하고 해결해야 하는가에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건1. 시간 약속의 문제 - 예전엔 시간 관념이 정말 철저했던거 같은데, 요즘엔 나도 시간 관념이 점점 없어지는 터라 시간 약속을 어느정도 지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약속시간의 30분 이상을 늦는 경우엔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사건 1의 경우는 '그런 불성실한 태도는 용서받을 수 없다'로 결정을 내렸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엔 관련된 사람들과 그 윗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건 윗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의 부분. 어느선까지 내가 처리를 할 수 있고, 이 사람과의 갈등 혹은 전체와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가장 고민이었다. 좋게 말하면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는것.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화를 내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젠장.

사건 2. 미묘한 일처리에 관한 문제 - 물론 사건2의 경우 미묘하지만 미묘하지 않기도 한..복잡한 일이다. 한두명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여러사람의 관점과 느낌이 달랐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내가 이야기를 나눈 몇 사람은 나와 관점이 비슷하거나 같았다는 것. 결국 사건2는 사건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우리가?) 원하던 방향으로 일이 해결이 되어가고 있다. 이야기를 하게 되기 까지 많은 사전 논의가 있었고, 고민이 있었고, 이야기를 하기로 한 사람의 심적 부담이 크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사건은 해결이 되어가는 듯 하다. 사건2로 인해서, 조금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것도 같고, 일단은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결론.

사건3. 이 사건은 가장 오랜시간동안 나를 붙잡아 두고 있는 문제이다. 소수의 사람들과 관련된 일이며, 이성과 감정의 엇갈림이 오랫동안 공존하고 있다. 대화도 소용없고, 분노도 소용없다. 사건3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갈등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은, 아무리 이성이 열린다 해도, 감정이 열리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건4. 이건 그 전주에 있었던 사건. 몇달을 끌어온 사건을 외부의 개입으로 일단락지었다. 일단락이라고 하는 것은, 외관상은 화해(?)이지만, 사실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으니, 어떤 이는 진심으로 다시 대할 것이고, 어떤이는 가식적인 사회화를 행할 것이라는 것. 사건4의 경우 어쩌다 보니 외부의 개입이 이루어졌고, 그 개입이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것에 포인트가 있다. 내 감정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여하 감정여하에 상관없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대화를 섞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갈등, 표출, 그리고 대화의 방식.

네가지 갈등. 그리고 비슷할지도 모르는 결론들. 여튼 나의 결론은 끊임없는 대화는 당연하며, 필요할 결우 외부의 개입도 요청해야 한다는 것. 이게 뭐냐;;;;;;
2009/05/02 22:58 2009/05/02 22:58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예전 어느날엔가는 주말이 사라지기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휴식같다는 주말이 종내에는 독이되어 나를 찔러댔기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나는 남들보다 일찍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덕분에 일상과 꿈 속을 헤메이면서 더 정신없는 몇일을 보내야만 했지만... 하지만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10분전까지는 네이버에서 여성영화제를 검색하고 장장 40페이지에 달하는 블로그의 글들을 훑어봤다. 그 전에는 여성영화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시한번 자유게시판을 살피며 고민에 빠졌다. 저 컴플레인의 글들엔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걸까, 11년이나 된 영화제는 왜 계속 같은 불만을 듣고 있는걸까, 내년에 더 좋은 영화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이정도면 가히 중증임에 틀림없다.

내가 무슨 관계자라도 되는 마냥, 사람들의 대화 하나하나를 귀기울여 듣고, 불평불만에 신경을 쓰게 된다. 며칠전 누군가의 대화처럼 이시간만 지나가면 땡일지도 모르는데, 그 땡- 하고 지나간 시간을 계속 부여잡으면서 난 영화제 걱정에 빠져있는거다.

이건 지금 발제의 압박에 대한 도피일 수도 있고,
여성영화제에 대한 과도하게 지나친 애정일 수도 있다.

고작 데일리팀으로 일주일을 지낸 것 뿐인데 무슨 난리인가 생각이 들었다가도,
난 관객이었고, 공연도 했었고, 이번엔 무려 데일리도 만들어 냈고, 앞으로도 여성영화제는 내 인생에 아주아주아주 중요한 행사로 함께할텐데 이정도의 관심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난 여성영화제가 너무 좋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가 너무 슬프기도 했다.
신선하고 우리의 글들이 좋기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전문적인 글들이 나오지 못했던 현실이 아쉽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들어왔던 여러가지 컴플레인들도 너무 아쉬웠고,
내 눈에 거슬렸던 몇몇 부분도 너무 아쉬웠고,
게시판에 올라오던 컴플레인도 너무 아쉬웠다.

완벽한 행사를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겪을때마다 느끼는거지만,
그래도 내가 있는, 내가 보고있는, 내가 즐기고 있는, 내가 참여하는 이 행사만큼은 항상 완벽해지길 바라게 된다.
그래서 뛰고 뛰고 뛰고 뛰고 뛰고 뛰고 뛰고 뛰고, 그리고 또 뛴다.

그래서 이번 여성영화제가 나에겐 너무 아쉬운가보다.

나는 데일리를 열심히 만들었지만,
그 외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내년에는 어떤 팀에서 일을 해야 할까"였다.

내년엔 여성영화제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도 아니고 어떤 팀을 고민하는 나를 보면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그건 작년 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는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허락했다면 올해는 더 열심히 참여하고 싶었다. (단기 자활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건 '당연'의 문제인거다. 나는 거기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는거다.

그러고 나서 또 끝나면 재밌게 놀지 못했다고 징징거릴꺼면서도 어떤 행사에 한번 발을 담그고 나면 늘 이런식이다.

벌써 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그림 속에는 '캔디'가 존재한다.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난 정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다.

올해 아쉬웠던 많은 일들을, 내년에는 아쉽지 않게 하고 싶은 맘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나에게 여성영화제는 끝나지 않은 축제로 계속될 것만 같다.

2009/04/18 00:50 2009/04/18 00:50

2008년이 지나고 2009년이 되면서 소소한 변화가 몇가지 생겼다.

1. 지난 가을부터 함께 살게된 꿈냥.
   함께 사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삶에 힘이 된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도 들어가게되는... 나에게 책임을 가르쳐주는 존재. 내가 없는 동안 혼자 집에서 뭘 하고 있을지 걱정이되기도 한다. 함께 있어야 잠이 잘오고, 나누는 대화(?)는 즐겁기만 하다. 이녀석, 내가 집에오는 소리만 들리면 문앞에서 나를 반겨준다.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녀석의 말을 내가 다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서운하다면 서울할 따름.

2. 방 구조 변경(은 진행중)
 대대적으로 방 구조를 변경을 했다. 돈이 있었으면 이사를 했을지도, 혹은 더 많은 구조변경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침실과 서재를 바꿔버렸다. 아직은 청소를 다 마치지 않아서 심란하기 짝이 없지만, 왠지 다른 집에 온 것만 같아서 약간 뿌듯하기도 하다. 졸지에 화장대는 전자렌지대가 되어버렸고, 침대 위에는 정리하지 못한 옷이 쌓여있지만, 뭐....3월까지 천천히 정리하지 싶다. 학교에서 가져온 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책장을 하나 구매할 예정. 수납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집의 수납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없다;;; 정리를 하면서 수많은 사진마저 버렸다. 책도 버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사실 책은 버리기가 좀 그렇다. 정말 책이 많은 J(의 집은 책장만 벽 하나를 가득 메운다)나 R의 집(듣기만 했지만, 상상만 해도 그 집은 책으로 뒤덮여 있다)보다야 현저하게 덜하지만, 가득찬 5단 책장 두개와 3단 책장 하나, 그리고 새로 들어올 5단 책장을 하나 더하면 우리집도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나마 돈이 없어서 지난 하반기때는 책을 거의 사지 않았지만, 사고 싶은 원서들이 잔뜩이다. 당장 보지도 않을꺼면서 왜 그렇게 욕심은 생기는 건지...가능하면 꿈냥을 위해 캣타워도 사고 싶지만, 놓을 공간이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긴 한다.

 생각나서 만들어본 우리집 구조-ㅅ-;;

  이렇게 그려놓으면 뭔가 엄청 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거;;;;(내가 그런것들의 절반 수준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됨)(혼자 살기 좁은 집이 절대 아니란건 안다;;) 저 컴퓨터와 전자렌지 사이에 책장을 하나 더 놓을 예정. 사실은 행거 자리에 옷장을 놓고 싶었으나....자리의 압박이 크다.  



3. 생활공간의 변화(가 있을 예정)
  반년동안 하던, 학과 조교가 이번달로 끝이 난다. 다음 직장은 상담실. 지난 봄-여름에 일했던 곳이라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알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기도 하다. 학자금 대출을 다시 받았고, 빚은 더욱 늘어났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다는 것은 지난 하반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학과 조교가 끝나면서 짐을 뺐는데, 게으름때문에 짐만 싸놓고 한달도 넘게 있다 한꺼번에 옮겼다. 별로 많지 않을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많더라. (많은 짐중의 1/4정도는 둘데가 없어 쟁여두었던 단체짐이었다;;; 이제 이건 우리집에 쟁여지게 된다.)

4. 그리고 역시 활동.
상반기엔 분명 많은 일들이 있을거다. 그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공부도 해야하지만, 활동을 절대 놓을 수가 없다.
열심히 살아보자. 변화를 꾀하면서도 절대 놓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

늘 새해마다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한다.
올해는 안하고 싶었는데, 주저리주저리 하다보니 또 결심을 하게 된다.

크흐-

모르겠다. 요즘 기분이 꾸리꾸리하다.

원인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그냥 다시 묻어두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문제없다....라고 생각하는게 늘 문제긴하다.

힘내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힘내보자!




2009/02/09 19:05 2009/02/09 19:05

암울한 2009년.

Thinking 2009/01/22 10:51
암울한 2008년이 지나고, 더 암울한 2009년이 왔다.

2009년의 초반부터, 우울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인권위의 2009년 정책에서는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그날 오전, 용산에서는 철거민 강제 진압에서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

하지만, 정부의 어디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기가 민주국가라고 하는 대한민국이 맞는걸까.

망루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인권위 간담회에서는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조차 알 수가 없다.

말을 하고, 언성을 높이고, 끊임없이 집회를 하면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걸까?

과연 듣기는 하고 있는걸까...

암울한 2009년이다.

사람들에게 힘내야 한다고,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막막하기가 그지없다.

작은 희망에 웃는 것만으로 지속시켜 나가기엔, 너무 커다란 먹먹함이 가슴을 뒤덮는다.
2009/01/22 10:51 2009/01/22 10:51

구멍난 양말

Thinking 2009/01/12 14:20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은 싶은 날은 구멍난 양말을 신는다.

양말에 난 구멍으로 어색하게 나오는 발가락이 우습고 창피하기가 그지없다. 게다가 온전하지 않아서 어색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구멍난 양말을 신고 있으면, 걸을 때도 앉아있을때도 끊임없이 발을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어떤 약속자리도 편하기 앉아있지 못하고 집에 빨리 돌아가게 되곤 한다.

처음엔 구멍난 양말과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음을 연관짓지는 못했었다. 그저, 당연히 창피해서 그러려니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난 의식적으로 구멍난 양말을 신었다. 발바닥에 구멍이 난 것은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혀서 아려오니까 발가락에 구멍이 난 것이 좋다. 너무 크게 난 것은 튀어나올 염려가 있으니 나올랑 말랑 한 것으로. 그리고 오늘은 집에 빨리 돌아오겠노라고 결심을 했다. 따뜻한 방 안에 온 몸을 묻고 몸과 마음을 노곤노곤하게 지져주고 싶다.

요즘의 나는 지쳐있고, 새로운 기운을 필요로 한다.

구멍난 양말은 어쩌면, 나를 쉬게 만들려는 무의식의 확장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여전히 이 양말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09/01/12 14:20 2009/01/12 14:20

오랫만에 꽤 괜찮은 술자리를 가졌다.

나온 이야기는 현실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

1. 생활인이 되자.

2. 돈을 벌어야 한다.

3. 활동도 접을 수 있어야 한다.

4. 과외를 구해보자.

5. 엄마와의 관계는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자.

결론 : 당장 일자리를 알아보자. 일자리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활동을 줄이거나 당분간은 하지 않아야 한다. 엄마가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느정도 내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뛰어보자. 아자아자

2008/08/23 02:16 2008/08/23 02:16

신경줄 놓기

Thinking 2008/08/13 19:05
신경줄이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다.

어젯 밤부터 목 안이 간질간질 하기 시작하더니 오늘이 되니까 코도 막히고 몸도 쑤시는게 감기에 걸렸다는걸 여실히 드러내준다.

 갑자기 든 생각으로는 'J가 나타나서(혹은 돌아와서)' 그럴지도 모른다는거였다. 뭔가 가지고 있던 가득한 책임감들이서 심정적으로나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서있는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혼자 잘 서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고, 내가 없어도 이 프로젝트들은 진행이된다. 나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또 함께 즐거워 하는 구성원인거다.

신경줄을 좀 놓자.

괜찮다 괜찮다.

2008/08/13 19:05 2008/08/13 19:05

문득 나에게 잊혀져 있던 성폭력 사건이 떠올랐다.

사건이 일어난건, 11년 전. 가해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지만 피해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
그 사건을 알게 된건 6년전, 피해자가 관련된 곳에 글을 올리면서이다.

나는, 가해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글의 내용을 알리고 그 글을 삭제했다.

그리고 며칠전, 갑자기 그 기억이 나에게 찾아왔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죄책감.

지금에 와서, 난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당시, 난 글을 지우는 것으로 사건에서 한발짝 물러났고, 경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1. 피해자와 연락해서 사과를 한다. - 난 피해자의 이름외에는 어떠한 연락처도 모르고 있다. 직접적인 가해자도 아닌, 그리고 안면도 없는 나의 사과가 그녀에게 더욱 상처만 주는건 아닐까?

2.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묻는다.  - (어쩌면) 잊고 사는 그들에게 상처를(그리고 그들 주변의 무수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그리고 그것을 들추어 냄으로써 그들이 나를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3. 사건의 진위를 모른다. - 경과조차 모른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있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든 행동함으로써 미칠 아주 사소한 것 조차, 나는 두렵다.



            
2008/07/04 01:53 2008/07/04 01:53

사람들이 회의를 오지 않을때?

라고 말을 했던가...

사실, 요즘은 힘든게 뭔지도 잘 모르겠어.

아니, 언제는 내가 힘들었나.

활동하는건, 한번도 힘들지 않았던것도 같아.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잖아.

활동때문에 힘들지는 않은거 같아.

사람들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있는것 같아.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 내가 책임져야 하는 몫, 그걸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나.

하고싶은일은 아직도 잔뜩이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잔뜩인걸.

몸이 피곤한적은 있는거 같아. 요즘 쭉- 아프기도 했고...

이놈의 감기는 아직도 떨어질 생각을 안하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나를 잘 관찰하고, 잘 살펴줘야 하는데, 나를 잘 모르겠어.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끝장일것만 같아.

힘들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 빠져들어갈꺼야.

힘들고 싶지 않아.

그저, 즐겁고만 싶어서..그냥 즐겁다고 즐겁다고 되뇌이기만 하는것일지도 모르겠어.

2008/05/21 02:00 2008/05/21 02:00

내동생

Thinking 2008/04/22 02:22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내가 얼마나 동생 자랑질을 (그리고 흉을) 보고 다니는지.

연년생인 내 동생은, 내 친구고, 오빠고, 최고의 지지자이다.

나는 이놈을 '아들'혹은 '윤또깡'이라고 부르며, 몇년간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뭐, 별다른 이유는 없다. 울엄마 아들이니까 아들이고...윤또깡은 도대체 왜 만들어진건지 기억도 안난다.

이놈과의 질긴 인연은 장장 곧있으면 30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십년은 더 지속되겠지.

처음부터 내가 동생과 친했던건 아니다. 이놈은 늘 지능적으로 나를 괴롭혔던 놈이었다.
통화하는거 도청하기,내친구 신발에 본드 뿌리기등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고, 누워있는 내 귀에 기억도 나지 않는 사악한 말들을 지껄여서 내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도망간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놈의 방 앞에 식칼을 꼽아두며 죽여버리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다.
(물론그 외에도, 내가 실수로 수영장에서 동생을 죽일뻔 한 사건도 있었으나, 그건 살고자 하는 본능에서 동생을 밟고 올라선 것일 뿐이다. 절.대. 고의가 아니었다)
중학교 어느땐가는 가출하려고 짐을 챙겨나가다가 동생에게 '질질'끌려 집으로 귀가한적도 있다. 나는 동생을 싫어했고, 재수없는 놈이라고 여겼었다. 적어도, 고등학교 초기까지는 그런식이었었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동생은 늘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어디에가도 "우리누님" 자랑 말고는 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동생에 대한 나의 감정이 달라지기 시작한건, 아마도 고3 이후였던거 같다. 동생은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돈으로 나에게 100일반지를 해줬다. 노래를 만들면 내 앞에서 제일 먼저 불러줬고, 글을 쓰면 제일먼저 나에게 보내서 감상을 물었다. 지리한 짝사랑을 하면서도 나에게 의논을 해 왔었다.

아빠랑 싸우고 울면서 전화를 했을때는 모든일을 뒤로하고 달려와서 나와 함께 울어주던 동생이었고, 군대에 가면서 서울로 상경한 누이에게 백여만원이 든 통장을 건네주던 동생이었다.

가족과 나는 다른 존재라고 믿어의심치 않던 나에게, 동생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뭣때문에 이놈은 엄마보다 더한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건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놈의 나에대한 지극정성은 끊이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이놈은 나의 '사랑하는 동생'이 되어버렸다.

내 사랑하는 동생의 목표는 "취직"이다. 모두가 욕심내는 곳에서 욕심내는 공부를 하면서도 이놈은 졸업하자 마자 취직을 하겠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서포트하기 위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가진 이녀석.

작년 설즈음에 동생이 전화를 한번 한 적 있다. 아무말 말고 망원역으로 나오라길래 갔더니 지하철역 안에서 손만 뻗어서 나에게 십만원짜리 수표를 쥐어주고 손을 흔들면서 가버렸다. 하루 종일 작업을 하고, 또 빈시간에는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을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쥐어준다. 십만원으로 한달을 산다고 말하던 동생에게 그때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 끊임없이 이녀석의 애정을 이용하고 요구를 한다. 돈을 벌어서 나를 도와야 하고, 내가 애를 낳으면 양육비를 대야 하는것도 동생임을 주지시키는 것에 나는 여념이 없다. 고작해야, 가끔가다 먹을꺼나 사주고 돈만원 쥐어주는것에도 생색을 내면서 나는, 고작 나는 아직도 그런식인거다.

그런 내 동생. 너무 착하고 착하기만 한 내 동생......

오늘은, 동생 앞에서 눈물을 쏟아버렸다. 동생이 하고 있는 모회사 인턴과정에서 이녀석이 정말 엄청난 기획안을 써낸 모양이다. 그 엄청난 평가를 담담히 말하면서 그 사람이 "졸업해서 뭐할꺼냐"라고 묻는 말에 "어디든 취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는 동생이..무엇을 하고 싶다 말해도 지지 받았을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을 해버린 동생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워서..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한 내가 너무 미안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녀석은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지지해주고 있는데, 나는 고작 해줄 수 있는게 이녀석 몸뉘일 방한칸 주는 것 뿐이라는게 순간 너무 서러워졌다.
그 샘솟는 재능을, 열정을, 노력을 서포트해주지 못하고 있는 내가, 그냥 말로만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해라 라고만 하는 내가...너무 서러워졌다.

난, 그만한 애정을 받을만한 존재인걸까. 절대적 애정이라는 엄마의 사랑과도 비교가 안될만큼 정말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집에 들어올때마다 동생은 어미새마냥 먹을 것을 사오고, 청소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결과물들을 나에게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런 동생에게 난 그냥 대답이나 해주는 식이다.
저녁한번 먹자는 전화에도 스케쥴때문에 오늘은 힘들다는 소리만 해대는 누나이다.
간만에 내가 사온 간식을 먹으며, 동생은 오늘 저녁을 먹지 못했다고 하면서 내가 사다준 유부초밥 한개에 너무나 행복해했다.

괜히 눈물이 막 난다. 또 며칠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할 녀석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앞으로도 아마 동생은 나의 서포터일 것이고, 내가 여자친구를 사귀면 같이 술을 마셔줄꺼고, 발제문에 머리아파 하면 조언을 아끼지 않을꺼다. 그리고 난, 그저 이녀석과의 대화에서 웃어주면서 그녀석이 꿈꿨던 남매 영화사를 차리지 못함을 미안해하겠지. 그냥, 그렇게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끊임없이 기대가면서 그녀석의 그늘아래서 쉬고 있겠지.

자랑스러운 나의 서포터. 나의 백그라운드.

고맙고, 사랑한다. 내동생.

2008/04/22 02:22 2008/04/22 02:22